전쟁사 이야기 40편 - 현상과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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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랫만에 글을 쓰네요. 저도 나름 인생이 좀 바빠서 뜸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목은 어려워보이지만 역대급으로 내용은 쉬운 이야기가 될 듯 합니다.
여기서 '현상과 본질' 이라는 것은 제가 쓴 '수국비' 에서 한 유형으로 사용되었었습니다(더 정확히는 '현상과 원리'). 그만큼 이 세상에는 겉으로 보이는 '현상'과, 그 속에 숨어서 잘 안보이는 '원리, 본질'이 존재합니다.
여태 전쟁사 이야기를 연재하고 저 나름 더 공부하면서 '병기, 무기'에 대해서 깨달은 '현상과 본질'에 대해서 한번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시를 몇개 들어볼 것인데, 조금만 읽어보아도 바로 이해가 될 껍니다.
(대한민국은 얼마 전 '수중발사탄도미사일', SLBM을 세계에서 7번째로 개발한 국가로 기록되었습니다. 내로라하는 강대국들이 열을 올리면서 개발하는 이 무기는, 상대방에게 큰 공포를 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https://www.ytn.co.kr/_ln/0101_202109190611286282)
전쟁사에서 무기의 발전을 정말 눈부십니다. 세계 1차대전 당시까지만 해도 항공기는 그저 정찰기나, 작은 수류탄을 허공에서 던지는 애들 장난감 취급을 당했었습니다. 그러나 1차 대전부터 항공기의 기술은 발전하고 화력이 증가하여 2차 대전에는 태평양 전역에서 항공기가 지배하는 전장이 펼쳐졌습니다.
보다 강력하고 정확하고 가성비가 뛰어난 무기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 국가들이나 관심을 가지고 큰 돈을 투자하는 사업입니다. 대한민국 또한 여러가지 신무기를 계속 개발하면서 주변국들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무기가 발전하고 신무기가 등장하는 시대에서, 과거의 구식 무기들은 공부할 필요가 없을까요? 이들에게 역사는 그저 과거의 사건일 뿐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의 무기들, 그리고 그 무기들이 발전한 과정은 새로운 무기를 만들때 핵심적인 교훈을 줍니다.
영화 <안시성>에서 보면 무거운 철갑을 말과 사람이 꽁꽁 싸메고 적진을 향해 무지막지한 돌격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흔히들 들어본 고구려의 개마무사들은 실제 이런 전법을 사용했고,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이런 중갑 기병에게 치인 병사들은 날아가거나 깔려서 죽거나, 어디가 심하게 부러져서 중상을 입기도 합니다.
이런 말을 탄 기병의 활약은 꽤나 오랫동안 이어져서, 세계 1차대전에도 존재했었으며 2차대전에서도 쓰였습니다. 기관총이나 소총 등의 화약무기가 발달하면서 결국 기병은 도태되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마지막까지 보급에 쓰이는 등 말이라는 가축은 전쟁에 깊숙히 관여해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1945년 광복 이후 기병 경찰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현대전에서 중갑을 찬 말을 탄 기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진을 향해 돌격한다면 총탄이 쏟아질 것이고 어딘가로 우회한다 하더라도 음속 이상의 속도로 날라오는 포탄과 미사일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전에서 '기병'이라는 개념은 사라졌나? 아닙니다. 현대전에서는 '전차'가 과거 '기병'을 계승했습니다.
영화 <안시성>에서 등장하는 고구려 개마무사의 모습. 무거운 중갑을 두루고 적진을 향해 돌격하여 마치 자동차가 사람을 치고 지나가듯 적에게 공격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매우 강력한 전차군단을 보유했습니다. 전차는 과거 기병처럼 적의 방어선을 돌진, 돌파하여 전선에 구명을 내고 적에게 충격을 가합니다
과거 중갑기병, 중기병은 튼튼한 갑옷을 입고 적의 화살비를 튕겨내면서 적을 향해 돌격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말 물리적으로 적을 치고 지나가면서 전열을 흐트리고 보병을 깔아뭉갰었죠. 그런데 현대에서는 이 정도 갑옷을 뚫을 무기는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그래서 기병을 대체하여 등장한 것이 전차입니다. 전차는 기병보다 훨씬 더 두꺼운 장갑으로, 더 무거운 질량을 더 강력한 마력으로 기동하여 적의 포화를 견디고 방어선을 돌파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전차의 철갑탄은 적의 전차를 뚫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합니다.
과거의 기병은 정말 물리적으로 사람을 충격력으로 깔아 뭉개고 제압했었습니다. 그런데 전차는 이 의미에서 더 확대되어, 적의 촘촘한 방어선에 큰 충격을 가해서 빈틈을 생기게 하고 그 사이를 아군이 비집고 들어가게 도와줍니다. 아군 보병의 진격을 가로막는 기관총 진지는 전차가 가뿐히 밀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렇듯 '기병'이라는 역할은 그 형태와 모양이 바뀌었지만 오히려 중요도와 역할은 더 확대되었습니다. 과거의 기병이 말을 탄 사람이었다면, 현대의 기병은 전차와 승무원들이죠.
또 다른 예시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SF만화나 영화에서 보는 에너지 무기가 생각나십니까? <스타워즈>에서는 뿅뿅 소리를 내며 발사되는 레이저 무기와, 그걸 화려하게 막으면서 위엄을 뽐내는 광선검이 있죠. 그런데 최근에는 실제로 그런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고 합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23hyunsj&logNo=220207234171
이러한 레이저 무기가 개발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당장 미국이 상대하는 불량국가 중 '이란'은 미국의 막강한 구축함과 항공모함 전대를 상대하기 위해 값싼 물량공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속정, 그러니까 엄청 빠른 요트같은 작은 함선들을 우루루 보내서 소수 정예의 미 함대를 상대한다는 전략이죠.
그런데 웃긴건 실제로 미군이 이러한 위협을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까짓 고속정들 미사일 한방이면 다 박살나지 않나? 하지만 문제는 가격입니다. 현대의 미사일은 첨단의 정수이며 개당 가격이 정말 비싼 정확한 요격 무기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란 해군이 이런 값싼 고속정이나 드론으로 물량 공세를 오면 거기에 하나씩 이런 비싼 미사일을 발사하다가 결국 군비가 지나치게 지출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지적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군은 이러한 레이저 무기를 개발한답니다. 레이저 무기는 강력한 열광선, 에너지를 분출하여 적을 빠르게(광속으로) 격파할 수 있는데, 미사일에 비해서 엄청나게 싸다고 합니다. 정말 값비싼 미사일을 최대한 아끼면서 적의 빠르고 값싼 물량공세를 효과적으로 격파하리라 기대되고 있습니다.
이걸 보면 정말로 미래에는 총알이나 포탄 대신 미사일과 열광선, 레이저가 주를 이루는 SF소설 같은 전쟁이 벌어질 듯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과연 '총포탄'이라는 개념이 도태될까요?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총'을 생각하기 이전에 이런 비슷한 무기가 있었습니다. '활'이죠. 그럼 활의 원리는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운동 에너지입니다. 사람이 근력으로 줄을 당겨서 장력으로 에너지가 변환되고, 그 장력이 활을 멀리 쏘아서 적을 맞췄죠. 강한 운동에너지에 직격된 인간은 내장이나 근육이 파열되고 피부가 찢어지면서 출혈에 상처입습니다.
그럼 총은 과연 활과 크게 달라졌을까요? 단지 사람이 힘으로 당기던 대신, 이번에는 화약의 폭발력이 장력을 대체합니다. 사람의 힘보다 훨씬 강력한 화약의 폭발력은 총알이나 포탄으로 운동 에너지를 전달하고, 그 에너지로 총알이나 포탄을 멀리 날아가서 더 치명적인 파괴력을 전달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커다란 운동 에너지에 노출된 신체는 화살보다도 더 끔찍한 부상을 입겠죠.
그럼 이제 미래형 무기로 각광받는 '레이저 무기'는 어떨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전자기력이나 다양한 에너지를 빛과 열의 형태로 변환해서, 한 곳에 집중해서 발사하면 그 에너지가 전달되어 적의 병기를 뚫거나 파괴하는 것이죠.
(활이나 석궁은 배우기가 정말 어렵다고 합니다.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활을 강하게 당겨야 하는데, 그럴려면 힘도 굉장히 쎄야하고 활을 다루는 요령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https://hermit1004knowledge.blogspot.com/2014/12/blog-post_21.html)
그러니까 미래에는 총알이나 화살이 완전히 사라지더라도, 이 개념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레이저가 되었든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이 되었든, '운동에너지를 비롯한 강한 에너지를 적에게 쏘아서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라는 개념은 영원히 병기개발의 핵심이자 원리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과거 활이나 돌맹이의 역할을 총알과 포탄, 이제는 레이저가 계승한 것이죠.
좀 이해가 되시나요? 화살이 총알로, 총알이 레이저로 바뀌는 동안 그 형태와 겉모습은 바뀌었지만, 본질적인 원리와 역할은 같습니다. 에너지를 강하게 쏘아서 적에게 퍼붓는다.
앞서 예시로 든 SLBM도 맥락이 같습니다. 적에게 제일 공포스러운 것인 무엇일까요? 기습적으로 거대한 힘이 눈치도 채지 못하는 사이 자신을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전쟁영화도 그렇고 매복과 기습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정정당당한 전면전보다 훨씬 더 치명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매복이나 기습에 잘못 걸리면 몰살당하기 십상이죠.
이러한 매복, 기습 무기의 역할을 이제는 미사일과 잠수함, 곧 SLBM이 계승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탐지가 안되는 잠수함이 깊은 바다 속에서 잠자고 있다고, 명령을 받으면 곧장 적의 핵심 기지나 수뇌부를 향해 강력한 미사일이 발사되어 사람이 인지하기도 전에 폭발해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앞선 예시들과 마찬가지로, '기습공격'이라는 개념은 그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같으면서도 동시에 더 파괴적이고 위력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과거에는 미리 숨어있고 대기해 있다가 적이 오면 통나무나 바위를 굴리고 집중적으로 공격을 퍼부엇지만, 이제는 잠수함이 은밀하게 적의 아가리 밑에서 숨어있다가 바로 원점, 머리를 타격해버리는 것이죠.
손자병법이라는 전쟁사의 고전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죠. 그런데 그 책이 고전으로서 오랫동안 남아서 살아있는 이유는, 현대의 장교들이 정말 그 교재의 말대로 화살과 검을 쓰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고전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전쟁의 원리, 승리의 방법은 형태만 바뀔 뿐이지 근본적으로 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전쟁사나 역사나 여러분이 공부하는 수능이나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수능에서도 문제들은 다양한 형태로 여러분을 기습해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알고보면 결국 과거에 출제되었던 동일한 문제가 단지 숫자만 바뀌거나, 표현이 좀 난해하게 바뀌었을 뿐이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올해 수능에서 신유형이 나온다고 그것이 정말 천지개벽 할 정도로,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문제가 나올까요? 전혀 아닙니다. 분명 과거의 기출 문제에서 여러 개가 짬뽕이 되거나 표현이 바뀌거나, 좀 길게 풀어져있거나 짧게 함축되어 있을 뿐일 것이라 확신합니다.
공부를 할 때도 수험생들에게 조언을 하고 싶은 것이, 겉으로 보이는 표현에만 집착하지 마세요. 같은 본질, 같은 유형, 같은 생각을 지닌 문제들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이 정말 제대로 된 공부이고, 저는 그런 점을 수학이나 영어, 국어에서 느꼈기에 제가 나름 정리한 바를 책으로 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관찰과 성찰을 하여 그 본질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https://docs.orbi.kr/docs/7325/
전쟁사 시리즈
https://orbi.kr/00020060720 - 1편 압박과 효율
https://orbi.kr/00020306143 - 2편 유추와 추론
https://orbi.kr/00020849914 - 번외편 훈련과 숙련도
https://orbi.kr/00021308888 - 3편 새로움과 적응
https://orbi.kr/00021468232 - 4편 선택과 집중
https://orbi.kr/00021679447 - 번외편 외교전
https://orbi.kr/00021846957 - 5편 공감과 상상
https://orbi.kr/00022929626 - 6편 정보전
https://orbi.kr/00023174255 - 7편 실수와 인지오류
https://orbi.kr/00023283922 - 번외편 발상의 전환
https://orbi.kr/00023553493 - 8편 준비와 위기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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