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학벌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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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대한민국에 살면서 대학교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나라의 교육은 입시위주의 형태로서 모두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대다수 청소년들이 더 높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 대학교는 배우러가는 곳인데 높은 대학교에 가려고 공부한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이 아이러니한 과정에서 몰론 다양한 문제점도 발생하고 순기능도 존재하겠지만 어찌되었건 학벌이 중요하다는 것은 불편하지만 진실이다.
서울대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다른 여타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는 사람보다 뛰어날 것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가 다니는 학교의 친구들과 선후배들도 모두 서울대생들이기 때문에 그는 우수한 인재들과 경쟁한다. 이는 큰 동기부여가 될 수 있으며 타대학생들 보다 높은 수준의 담론이 형성되고 목표가 설정되는데 기여를 한다. 서울대학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학교로 부터의 학생에 대한 지원도 상당하다. 좋은 공부 환경과 잘 짜여진 교육과정은 명문대생으로서 그의 잠재력을 펼치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가 사회를 진출할 때 어떤 분야로 나아가던지 그 분야의 최고 위치엔 대체적으로 서울대생이 존재하며 많은 선후배들이 그 분야에 존재한다. 위에서 끌어주고 밑에서 밀어주기에 그가 사회에서의 업무수행을 하기에 더 수월할 것이다. 모두 대체적으로 부정할 수만은 없는 사실들이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2년의 수험생활을 더 거쳤으며 작년에 동국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한 번의 수능을 더 치렀다. 그 기간 동안 ‘학벌’에 대한 다양한 관점에서의 고찰이 이루어졌으며 만족스럽지 않은 수험생활의 결과로 인해 학벌이 주는 모종의 배신감과 좌절감에 대해 내 식으로 해석해나가야만 했다. 때문에 이번 에세이에서는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만은 없는 ‘학벌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왜 중요하고, 중요하다면 얼마만큼 중요한지, 이를 대하는 태도는 어떤 것이 바람직한지 등이 대한 ‘학벌’과 관련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보았다.
그렇기에 보통의 사례와 실례 등은 나 혹은 내 주위에서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하였다. 실제로 오랜 기간 동안 수험생활에 몸담았으며 나 또한 한국의 대학생 중한명이기에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들을 실제로 가지고 있었다. 다양한 대학교 학생들을 지인으로 두고 있고 만나왔기에 그들의 이야기도 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큰 참고가 되었다. 비슷한 관심사와 생각을 가진 또래들을 온라인 상에서 접하므로 인터넷에서도 이와 관련된 텍스트와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종종 접할 수 있었으며 연구에 참고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강의에서 쓰인 텍스트에서는 교육과 능력, 계급 등과 관련되어 있는 부분을 이번 연구와 접목 시킬 수 있었다.
Ⅱ. 본론
학벌주의는 왜 그리고 어떻게 생겨났는가?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배경을 알기 위해선 먼저 우리나라의 교육열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에 따라 옛날부터 교육을 강조하고 중요시 했다. 목민심서에 따르면 6부에서 ‘제 4조 교육을 진흥 시킴’에서 교육을 진흥 시킬 것을 강조하였으며 ‘제 6조 과거 공부를 힘쓰도록함‘과 더불어 ’제 3조 백성을 가르침‘, ’제 5조 신분 구별‘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귀족층인 양반은 배움에 힘쓰고 서민들을 다스리는 지도층으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는 당시의 시대상과 함께 신분제도를 엿볼 수 있다. 이는 많이 배웠으며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은 양반으로서 더 높은 자리에서 남들을 다스리는 편하고 귀한 일을 하며, 못 배운 사람들은 천한 일을 하고 고되게 산다는 전반적인 사회적 인식으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조선시대의 문화를 현 상황의 교육열에서도 살펴 볼 수 있다. 신분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이와 같은 인식은 완전히 사라지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힘든 일은 못 배운 사람이 한다는 인식은 사회 전반적으로 녹아들어 교육에 대한 열화를 심화 시켰다. 가난 했던 시절엔 대학 나온 사람이 대접 받았고, 형편이 나아진 다음에도 여전히 명문대를 나온 사람이 대접받고 있다. 내가 홀대를 받았고 힘든 시절을 보내서, 자식들에게 고충을 물려주기 싫어서 내 자식이라도 하는 마음에 자식들에게 교육을 강요하고 이는 교육에 대한 관심을 증대 시켰다. 소 팔아서 대학을 보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대단했다.
이렇게 대학교에 입학한 명문대생들 사이에서도 자의든 타의든 그들만의 카르텔이 생겨난다. 그들은 힘들게 들어간 대학교고 얻어낸 성과이기에 그들의 성과를 극대화 시키려고 한다. 최근의 대학생들 사이에선 종종 힘들게 12년 동안 참아가면서 공부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기위해 학교간의 수준을 나누는데 힘쓰기도 한다. 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참아가면서 내 미래를 위해 10대를 희생했는데 왜 남들과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하냐는 그들의 외침에 비난을 가할 수 만은 없어 보인다. 1학년 1학기 때의 일이다. 경영학원론 수업을 듣는 도중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들을 지방대랑 같은 취급하는 것은 싫어하면서 왜 명문대와 차별당하는 것에는 분개하느냐’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내용으로 우리학교에는 경주에 분교가 존재하는데 종종 이와 관련된 논쟁이 학교 커뮤니티인 ‘디연’에서 벌어지곤 한다. 본교사람들은 대체로 분교인 ‘경주캠’과 ‘서울캠’이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을 싫어한다. 학벌 싸움에서 열세에 있는 곳에서 조차 학벌이 획일화 되는 것을 거부하고 그들보다 더 열세에 있는 학교와 차별을 두려 한다.
다음과 같은 복합적인 요인을 통해 ‘학벌’을 기준으로한 차별이 발생했으며 현재에도 우리나라에서 ‘학벌’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자리 잡혀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도 ‘학벌’의 중요성은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2. 학벌이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는가?
한 강사의 인터넷 회계 강의를 들을 때의 일이다. 하나의 내용에 대해 설명하다가 다음의 예시를 들었다. ‘보통 일반적으로 우리는 다른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는 사람보다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사람이 회계사에 붙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이를 불편한 진실이라 칭했다. 끝으로 그는 다년간의 강사생활을 통해 봤을 때 성실한 사람이 결국 회계사 시험에 붙더라, 빈말 아니다. 라고 덧붙였다. 그가 덧붙인 말이 단순히 앞에서 한 말을 수습하기 위해, 책임을 지기 위해 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덧붙인 ‘성실한 사람이 회계사에 붙더라’라는 말도 결국 내게 큰 위안이 되지는 못했다. 서울대생이 결국 성실할 가능성이 높을 테니까.
국부론에서 아담스미스는 제1편 제2장 분업을 야기하는 원리에서 각 사람의 천부적 재능의 차이는 사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작으며 상이한 재능의 차이는 분업의 많은 경우에서 원인이라기보다는 분업의 결과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선천적인 재능의 차이가 거의 존재하지 않더라도 후천적인 습관, 풍습, 교육을 통해서 성인이 된 후에는 분업의 결과로서 짐꾼과 철학가 사이에 어떤 유사성도 인정하기 힘든 단계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결국 처음 아동기에서는 각 인간간의 능력차이가 크게 발생하지 않을 수 있으나 다년간의 수행의 차이에 따라 그 격차는 크게 벌어진다는 말이다.
이는 굉장히 잔인한 말이다. 삶은 각각의 독립적인 변수가 작용하는 독립시행이 아닌 일련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요인들이 영향을 끼치는 연속확률이다.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성실함을 가지고 배움에 충실히 한 사람은 커서도 성실하며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충실히 배울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게으르고 배우는 것을 싫어한 사람은 성인이 된 뒤에도 그가 하려는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세 살 버릇 여든 까지 간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때문에 서울대생은 당장에 그가 입학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다른 또래의 학생들 보다 우수한 지적 수준과 여러 사고력뿐만 아니라 그가 행해온 여태까지의 관성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명문대의 학벌이 보여주는 것은 그가 대체로 높은 지적 수준과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이외에도 학벌이 여태까지의 살아온 과정을 보여줘 타인들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삶의 자세에 대한 신뢰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맹목적적으로 학벌이 보여주는 부분을 맹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선 대입 선발과정에서 정확하게 뛰어난 학생을 높은 대학교에서 선발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다루기에는 논지에서 어긋나지만 학생들의 능력과 노력을 온전히 입시에서 반영하고 있는지는 생각해볼만 하다. 학생으로서 반드시 좋은 대학교를 가야만 하는 것은 절대 아니며 학교의 서열화를 무조건 적으로 지향하는 세태를 만들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공정성을 따져보았을 때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대입 과정에서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생긴 여러 입학 전형을 생각해 봤을 때 이러한 노력과 능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똑같이 노력했고 똑같은 성적을 받았는데 누구는 높은 대학에 가서 그만큼의 혜택을 받고 누군 손해를 입고 있다면 이는 분명히 불공정하고 노력한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벌의 차이를 줄이거나 제거할 수 있는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요구되거나 보다 공정한 대학교의 학생 선발을 통해 오히려 필요할 것이다.
또한 공부 외에 다른 부분에서 실질적으로 학벌이 그들의 높은 능력을 증명해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 될 수 있다. 공부를 통해서 대학에 들어왔고 이후에도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 부분의 차이는 분명히 인정할지라도 그 외에 실무적인 부분이나 다른 기타 능력에서도 학벌이 진정한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신뢰성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는지는 다시 한 번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3. 좋은 학벌이 갖는 이점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좋은 학교 시설로 인한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 학교의 많은 지원, 우수한 교수진, 잘 짜진 커리큘럼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요소들은 학교 사이에서 차이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은 이후로도 다른 학생들 보다 더 많은 후천적인 기회를 얻게 된다. 서울대생들 사이에는 다른 곳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담론이 형성되고 더 생산적인 사고와 지적 창출이 가능해진다. 더 뛰어난 사람들 사이의 경쟁은 그들이 현재에 안주하지 않도록 도와주며 그들에게 자부심과 자신감을 안겨준다. 그들은 남들보다 더 높은 목표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우리학교에서 공인회계사 시험인 CPA를 준비한다고 하자 동기들과 선후배들은 정말 힘들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국대학교 내에서 CPA를 준비하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명문대를 다니는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자 당연히 이뤄낼 수 있는 목표로 받아들인다. 동국대에서 CPA는 도전하기에도 상당히 힘든 것이지만 명문대에서 CPA는 도전하면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는 CPA 합격자 수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똑같은 조건으로 대학에 들어와 시험을 준비하지만 소위 말하는 연고대에서는 매년 150명가량의 합격자를 내지만 동국대에선 30명가량의 합격자만을 배출한다. 이는 더 낮은 대학교로 가면 더 심해진다. 매년 한 두명의 합격자를 배출하는 학교에서 CPA를 합격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게 여겨진다. 이렇게 학교에 따라 목표를 바라보는 ‘눈’이 결정된다.
사실 합격자수가 아닌 합격률에서 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합격자수 1위의 학교에서부터 10위권의 학교까지 합격률은 40%대에서 30%대로 합격자수 만큼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결국 시험에 도전하는 응시자수에서부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지방대에서는 CPA를 이룰 수 없는 목표로 바라보고 주위사람들은 계속해서 그가 자신과 같은 위치에 속하도록 끌어드린다. 내가 도전하기에 너무 버거워 보이니 너도 안될 것이라 모종의 의식이 심어져있다. 하지만 명문대에서 조차 통과하기 대단히 어려운 시험으로 여겨지는 행시, 사시와 같은 고시 합격자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지방대에서도 찾아보면 꼭 한 두명은 존재한다. 결국 정해진 틀을 깨고 주위보다 더 높은 목표를 이루는데는 커다란 도전의식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졸업한 이후에도 사회에서 형성되어 있는 카르텔을 무시 할 수는 없다. 같은 학교 출신으로서 서로 가지는 유대감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데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다음과 같이 명문대생만이 가지게 되는 차별성은 다양하며 또 그 영향력은 지대하다. 애초에 대학교에 들어오기 전 가지는 능력에서도 차이가 나타나며 지내온 과정에서 나타나는 생활습관이나 삶의 방식에서도 차이는 발생한다. 하지만 이후 발생하는 학교에서의 지원뿐만 아니라 그들 집단이 형성하게 되는 ‘수준’에서 동기의식과 목표의식등과 같은 것이 명문대생과 비명문대생의 차이를 더 크게 만든다.
4. 학벌주의로 인한 문제
위의 내용으로만 보면 학벌로 인한 차별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뛰어난 학생들이 들어와 그들의 재능을 펼치고 그것을 인정받는 것에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엔 큰 문제점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바로 높은 학벌을 쟁취하지 못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기회의 박탈이다. 어디에서 기인하던지 간에 학벌의 차이를 인정하고 학벌 간의 간격이 발생함과 동시에 기회의 박탈이 발생한다. 가령, 행정고시라는 시험은 학교와 무관하게 치러지고 그 이후의 공무원으로서의 능력이 학교와 반드시 정비례 하는 것은 아니지만 행정고시 합격 이후 승진에 있어서 출신 대학교가 크게 작용하게 된다. 이외에도 기업에서 신입사용을 채용할 때 출신 학교를 따진다던가 하는 것은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에 뼈를 깎는 노력을 했더라도 학벌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게 만드는 한계를 정해버린다. 이는 이미 자신의 위치가 정해졌다는 좌절감에 빠지게 하고 큰 박탈감에 빠지게 한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이제까지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고 서술한다. 다양한 계급간의 대립은 그 형태만 달리 했을 뿐 지속되었으며 이 투쟁은 항상 전체 사회의 혁명적인 개조로 끝나거나 투쟁 계급들의 공동 몰락으로 귀결되었다고 한다. 현재 학벌의 차이로 인해 대체로 이어지는 사회계급의 발생은 부르주아 층의 기득권 유지와 무관하지 않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카르텔을 쥐고 다른 학교와 집단에게 배타적이라면 이는 계급간의 대립을 면치 못할 것이다.
계급이 발생하는 건 결국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명문대생의 노력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다른 사람의 손해로 이어지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경쟁사회에서 한 집단 혹은 개인의 이익이 도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어긋나지 않은 것일지라도 다른 사람의 손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더라도 이 경우에는 아예 학교가 정해진 이후 개인의 노력의 기회조차 박탈하기 때문에 이러한 불공정은 없어져야 한다.
높은 학벌을 가진 자는 부단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뤄낸 가치를 빛내기 위해 노력한다. 최근에 1학기 내내 반수를 고민하다 최근 휴학을 하고 수능을 치르기로 결정한 후배가 말했다. 자기 좋은 관계를 가지게 된 서강대학교 경영학과에 다니는 오빠가 있는데 둘이 술을 먹다가 그 오빠가 술김에 자기는 재수를 해서 서울대를 가려고 했으나 가지 못했으며 서성한(서강대학교, 성균관대학교, 한양대학교를 통칭하는 말로서 일종의 대학교별 카르텔 형성 과정에서 생겨난 말이다.) 밑의 대학교는 잡대(낮은 레벨의 대학교를 안 좋게 부르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보기에도 맞는 말 같으며 자기도 더 높은 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심지어 이에 관련한 세태와 관련하여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괴물이 된 이십 대의 자화상)』이라는 책까지 출판되었다. 저자는 오늘날 이십대들은 자신의 현재 위치에 대한 방어와 타인에 대한 공격성을 가진 가해자이자 사회의 피해자의 두 모습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길 원하는 것에 대한 박탈감과 분노, 지방대와 상위권대 학생들간의 학교 서열과 학교 등급, 학과 등급을 나누고 정시생과 수시생, 특별전형을 구분 짓는 등 단계의 차이를 과장하고 벽을 쌓는 ‘학력위계주의’가 이십대들을 지배하는 세태를 꼬집고 있다.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도 이와 관련된 대목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불평등의 기원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의 불평등은 자연상태인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서로를 의식하며 상대화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재산과 같은 소유가 생겨났고 여기서 경제적 부를 축적한 사람은 자신의 입장을 변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경제적 부를 축적한 사람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제도들을 확립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자신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만드는 불평등은 없어져야 한다. 비교적 낮은 학벌에 위치한 사람들의 능력과 노력을 인정해주어야 그들 또한 그들이 이룬 것들을 인정받고 사회를 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Ⅲ. 결론
먼저 개인적인 측면에서 명문대에 속하던 속하지 못하던 결국 대한민국 대학생이라면 자신의 학교가 가치고 있는 위치에 대해 무감각할 수는 없다. 어떤 방식이던지 자기학교에 대한 불만이나 만족 등을 느끼고 체감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대학교라는 타이틀은 고등학교 이후로 이미 정해진 것이다. 일부는 재수를 하는 등 수능을 다시 친다던가 편입의 방식 등을 통해 타이틀을 바꿔보려고 하지만 대부분에게 있어 자신이 입학한 학교는 앞으로 쭉 정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자신이 바꿀 수 있는 부분에 힘쓰고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효과적일 것이다. 자신에게 닥친 한계를 바로 수용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세는 삶의 태도에 있어서 분명히 긍정적이며 지향해야할 부분이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학벌을 통해 결과를 정해버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학벌은 하나의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야지 전부가 되어버려선 안 된다. 학벌이 가지고 있는 이점과 좋은 학벌이 나타내줄 수 있는 징표는 일부로서 작용해야 된다. 이러한 학벌이 너무나도 큰 비중을 차지해 이미 정해진 부분 때문에 구성원들이 자신의 한계를 정해버리고 의욕을 꺾어버려선 안 된다. 이는 사회 전체로서도 큰 손실이며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명문대생이 사회적으로 더 많이 성공하는 이유는 그가 명문대를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명문대를 나올 만큼 그의 능력이 출중했으며 그 대학에서 얻은 가치들이 크기 때문이여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그가 그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성공한다면 이는 대학교 입학 이후로 모든 사회적 입지가 정해져 있는 불공정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명문대생은 이에 현재에 자만하지 않고 자기계발에 힘쓰도록 하며 비명문대생은 더욱더 열심히 노력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끝으로 삶의 자세에 대해서 느낀 바를 서술하고자 한다. 5월 13일에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일보 한국포럼에 신청하여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정운찬 전 국무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등 티비에서만 볼 수 있는 유명 지도계층을 볼 수 있었다. 포럼에 참석하신 분들은 모두 교수, 혹은 정치인들로 화려한 약력을 가지고 있었다. 경기고 출신도 상당히 많았고 거의 다 흔히 말하는 sky대학교는 기본이고 석사에 박사, 해외 유학까지 다녀오신 분이 많았다. 나로선 기가 죽을 만큼 화려했으며 대한민국을 이끄는 사람들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곧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나는 절대 저들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저들은 흔히 말하는 상위 1%를 뛰어넘는 초엘리트 집단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고 성공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것을 가질 순 없다. 그렇다고 해서 추구하는 것을 포기해야할 이유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삶의 자세이다.
삶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본인의 만족이다. 만족이란 부가 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될 수도, 연인이 될 수도 있다. 본인이 자기 삶에 만족할 때 삶의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적당한 부의 축적과 주위 사람과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의 사회적 지위와 도전할 수 있을 정도의 목표의식 등 삶의 만족을 위해선 다양한 요인의 균형이 중요하다. 학벌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루었고 이를 계속해서 ‘불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서술했지만 본인이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편하게 인정할 수 있는 진실’로도 말할 수 있고, ‘내 인생에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서술 될 수 도 있을 것 같다. 때문에 학벌은 본인을 드러내고 나타내주는 징표이자 자신의 디딤돌과 같은 역할을 하는 도구로써 사용될 수도 있지만 결국 본인이 어떻게 이용하고 생각하냐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문헌
수험생 사이트 오르비 : http://orbi.kr/
동국대학교 커뮤니티 디연 : http://dyeon.net/
네이버 블로그글 <어떤 엘리트들의 위로를 바라보며> :
정약용 <목민심서>
아담스미스 <국부론>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선언>
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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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문제가 된다면 자삭하겠습니다.
학벌 만큼 괜찮은 지표가 없죠.
그렇다고 맹신할건 아니지만
'나 잘났소'라는 것에 공신력을 갖게 하는 유일한 기준이죠.
다만 요즘에는 그 외의 스펙같은 것들도 영향을 미치죠
당연한 듯 하면서도 참 복잡미묘하군요..
학벌을 따지는게 비단 우리나라뿐일까요?
우리나라 만큼 따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외국계 기업에 취직한 선배의 말을 들어보면 입사할때는 면접볼때 서성한 미만은 하나도 못봐서 기죽었는데 막상 취업하니까 외국계 기업은 학벌을 안따진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입학후 아싸테크 탈만큼 엄청 노력했다곤 하는군요.
그리고 다른 나라가 학벌을 따지던 말던 그건 상관없죠 남이 하면 다 할껍니까..
명문대생이 보통 높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건 맞는데 모든 명문대생이 그렇진 않으며,또 모든 지방대생이 안 그렇지도 않죠.
오.... 글 정말 잘쓰셨네요...
는 논술 광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