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접 [591036] · MS 2015 (수정됨) · 쪽지

2016-12-14 02:23:19
조회수 16,867

[16수능 썰] (2편) 불확실과 미련, 그리고 방아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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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님썰 소리를 계속 들었는데도


한동안 바빠서 못 썼다가


(막장 시국+과제 폭탄)


과제도 끝나 기분좋은 겸 올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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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orbi.kr/bbs/board.php?bo_table=united&wr_id=9107228


이전 스토리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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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을 내가 선택하는것 같지만, 아니 내가 선택한것이지만, 

그 신호는 여기저기 있다.


- 오르비 BigJohn님의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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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고증상 정확도가 좀 떨어질수도)


(초중반은 파편적 전개라서 두서가 진짜 없음)




고려대를 다녔던 2015년 1학기의 나 자신 모습으로


한번 되돌아가 살펴본다.



작년 1학기는 대체로 교수직 목표를 표방하였지만


실제로는 진로상 방황도 다소 잦았던 기억이다.




"박사학위만 딴다고 해서 교수되는 건 아닌거 알죠? 해외 대학원에서 포닥 과정을 밟고서 블라블라"


2015년 2월 OT날인가


그 당시 학과장 교수님의 필리버스터와도 같은 연설을 듣던 중이었다.



"이 간판이면 역시... 교수지!" 하던 나는 


교수 진로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잠시 귀를 기울이고서


교수님의 연설을 자세히 듣기 시작했다.


(물론 나중에는 체력이 다 빠져서 유체이탈을 시전했다.)



집에 가는 길, 지하철에서 조심스레 교수가 되는 기간을 계산해보았다.


"6년... 2년... 3년... 포닥 2년? 최소 기간으로 잡아도 13년인가..."


"...근데 교수 TO가 나야 한다며? 그걸 어케 버티지..."


머리 아픈 생각들은 접어두고 집으로 향했다.



"그 약대는 피트도 보지만 학교도 많이 보잖아... 수도권 약대 위주로 갈테니..."


"약대는 OO대 약대가 의외로 괜찮다던데 거기가 제약회사 사장들 학연도 있어서..."


레포트 쓰기 귀찮아서 잉여거리며 시간을 보내던 중


동기들은 한창 피트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레포트도 쓰기 싫겠다. (이럴 때는 청소가 더 재미있다.)


잠시 숨을 돌리는 겸


레포트를 내려놓고 이야기에 참여했다.



집에 가서 피트 인강 가격들을 검색해보았다.


'심심한데 한번 볼까나...'


인강 사이트들을 들어가서


"이 광고 드럽게 많이 보이지...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증정품은 맛있었다"


인강 목록들을 쭈욱 내려가보았다.



"......200만원....?" (물론 할인가로 99만원이라고 나와있긴 했었다.)


이 이후로 피트의 피 자도 꺼내지 않았다.



...이런 사례들처럼 다소 파편적인 방황들이 워낙 많다보니


한번의 흐름으로 쭈욱 연결하기는 어렵다.



뭐 가령 일반화학 1차시험 말아먹었다고


"아 XX 반수각이다" 한탄하면서도


사고와 표현 과제물 수행을 잘했다고


"진리의 전당 오오 내 새벽 갈아넣기를 잘했네."하고


바로 태세전환했을 정도로


일관성이 워낙 없었기 때문이다.



나열하기에는 쓸데없고 프라이버시도 있기에


굳이 나열하지는 않지만


그 정도로 수많은 파편적인 방황들을 보며


그 당시 나는 그냥 홧김에 그런거겠지...하면서


그저 파편이겠거니 하며 무시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파편들 하나하나가


무언의 신호들이었던 것 같기도 한다.



"작년 생2가 개막장이긴 했지. 그러고보니 생2면 여기 오기 전에는 의대 지망이었던거지?"


"그렇지. 아무래도."


"그렇구나. 우리 과 특성상 의대 지망했던 애들이 많더라고"


한 친구와 밥을 먹으면서 수능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참고로 우리나라 특성상 아재들에게도 단골 이야기 소재일 만큼 대학입학시험 이야기는 보편적인 소재다. 의외로.)



그 당시 우리 과 특성상


동기들 중에는 의대를 지원 또는 지망했던 애들이 매우 많았다. 


(타과에 비해서도 말이다.)


나도 그 중 한명이었다.



그럼에도 의대지망이었다는걸


굳이 말하려고 하거나 하진 않았다.


씁쓸하면서도 괜스리 미련을 둘까봐


"대학 들어갔는데 말해봤자 뭐해~" 같은 태도였던 것 같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 이게 돈이 안 도니까 사람들이 소비를 줄여..."


"진짜 이런 불황은 처음 본다... 민심도 다들 장난 아냐"




계속된 공무원 처우 저하와 주변환경으로 인해


2년전 공무원을 그만두고 법무사 개업을 시작한 아빠였지만


나날이 나빠지는 경제는 매일매일 걱정거리였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나빠진 경기란건 흠좀무)



거기에다 그즈음부터 아빠는 


"몸이 예전같지는 않아..."라는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아빠는 조심스럽게 나를 부른 다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 업계서 아빠가 언제까지 일할 수는 없을테고... 네가 언젠가는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할 시기가 있어야해"



아빠는 심상치 않은 경제불황과 


시장을 침범해오는 로스쿨 변호사들 때문에


이 업계에서 평생 돈을 벌기는 힘들거라며


언젠가는 경제적으로 독립해야만 하는 시기가 올거라고 말을 이어갔다.



아빠의 갑작스런 말에 나는 당황하면서 말했다.


"아니... 대학원 테크트리를 타서 교수를 목표로 한다면 그동안 경제적인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대학원을 가지 말라는 말은 아니고, 상황이 진짜 안 좋아지면 학부 취업이라는 방법도..."


"학부 취업을 목표로 하는 학과가 아니잖아요. 기초학문인데"



아빠의 말은 그당시 나에게 썩 달갑지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여하튼 일단은 어차피 오지 않은 미래니까


저 멀리의 일로 덮어두기로 했다.



"야 등산했으니까 오늘 저녁은 애슐리 각이다"


"야 아까처럼 넘어지지나 말고 ㅋㅋㅋㅋ"



5월 중후반이었을까


고등학교 친구 3명이랑 같이 


관악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던 길이었다. (삼성봉으로 기억)



나 "생2 그거 완전 꿀과목인데 그걸 버리려고?"


친구 "저번에 생2에서 피보고 이번에 반수하면서 느낀건... 표본상으로 지구과학이 꿀이야. 생2 표본 이번에 미쳐날뛴다잖아"


나 "하긴... 저번에 생2가 개막장이긴 했지"


반수를 준비하던 친구 녀석 한명과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친구 "아 근데 너네 과는 생명계열 학과인데 보통 진로가 어케 되냐? 학부취업은 잘 안되긴 할테고"


나 "진로? 보통 학계로 가거나 공직으로 가거나"


"대학원 루트인건가?"


"그렇지"


"야 근데 예전에 너 의대 목표로 했었잖아"


"그랬었지"


"...의대에 미련 좀 있지 않냐?"


"없겠냐... 미련이야 좀 있지... 반수 각인가 엌"


"그래서 이번에 반수할거야?"


"생각해보고 땡기면 해봐야지"



저녁먹고 집에 가는 길에


괜스리 들키고 싶지 않은 걸 들킨 느낌이라


살짝 씁쓸하면서도 아린 느낌이었다.



아무에게도, 심지어 필자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놓았던 미련 말이다.



그냥 왠지 누군가가 의대를 갔다거나


의대를 다니고 있다거나 하는 소식을 들으면


알수없는 찝찝함이 괜히 들곤 했었다.



"이 계란말이가 2000원이라고? 여기 남기는 하냐 ㅋㅋㅋㅋ"


"네가 제일 많이 쳐묵쳐묵했는데 돈 더 안내냐 ㅋㅋㅋㅋ"


"난 늦게 와서 적게 먹었음 ㅅㄱ 종강 개이득~"



2015년 6월 후순


드디어 1학기 종강을 맞이하고 방학이 되었다.



동기들이랑 선유도 근처서 계란말이 쳐묵하고 그런거 빼면


종강 후 1주일은 그저 게임이나 신나게 하고 있었다.



엄마 "야 너 방학때 뭐 한다며 맨날 게임만 하고 퍼질러 자냐?"


나 "어머니. 대학생은 방학의 기쁨을 잠시 누려야 합니다. 이게 다 재충전인거 아시ㅈ.."


엄마 "어휴 말로는 뭘 못해"



6월 28일 일요일


그날도 어김없이 퍼질러 자다가 일어나서


게임을 즐기던 중이었다.



"위이이잉" (휴대폰 진동)



카톡 하나가 와있었다.


반수 준비하던 그 친구였다.



"어이"


"와이" "공부중인가"


"9평낼신청인디"



그렇구나 하던 중 문득


'이렇게 잉여처럼 있을거라면 일단 9평이나 신청해볼까?'


슬쩍 호기심이 들었다.


(자꾸 미련이 생기니 한번 떨쳐보자는 느낌?)



"그렇군" "글면 내일 몇시?"



그렇게 방학에 심심한데 9평 신청이나 해볼 겸


다음날 월요일


8시 10분에 노량진으로 도착했다.


(비교적 집근처)



...어쩌면 이게 터닝 포인트


즉 방아쇠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도착했을 때


친구 녀석이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그 옆에 같은 학교출신 한 명이 더 있었다. ...사실 문과애라서 잘 모르겠ㅂ...읍)



"줄 참 진짜 길다. 노량진은 이게 처음 와본건데"



노량진을 둘러보았을 때


수많은 학원가와 고시생, 수험생들


육교와 컵밥 포장마차들


필자에겐 낯선 풍경이긴 했다.


(이전 이야기에서 보다시피 필자는 재수를 강남쪽에서 했던 상황)



줄을 기다리면서


잡담이나 실컷 까던 중


줄 앞에서 학원 직원이 하는 말은


필자를 당황케 했다.


"여기까지 9평 신청입니다. 뒤에 분들은 기다려도 차례가 안 옵니다."



"어 잠깐 그럼 어떻게 되는거냐?"


"이런... 그럼 다른 학원서 신청해야 하는데... 일단 뭐 먹으면서 생각 좀 해보자."


주변에 있던 버거킹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머핀 먹을만하네."



잠시 잡담과 함께 신나게 떠들다가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어떻게 될 것 같냐?"


"이거 지금 노량진 일대는 9평 외부 신청이 다 마감되거나 빡셀 것 같고... 신촌 메가 거기로 신청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신촌메가도 사람 많아서 좀 빡셀 것 같은디... 차라리 강남쪽을 알아보자. 서초메가 어떠냐?"


"거기는 이과생만 9평 받아주지 않아? ...일단 거기 전화번호 있어?"



전화를 해보니 9평 신청은 넉넉하게 될 것 같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나머지 한 명은 문과생이었다.



"아 그럼 신촌메가로 해야하나..."


"강북쪽은 어때?"


"거기는 엄청 멀잖아. 아침에 일어나는거 장난 아닐텐데"



결국 9평 신청은 결론내진 못하고


며칠동안 방안을 생각해보기로 하고서


그 이후는 잡담이나 쭉 떠들다가 각자 집으로 갔다.



집에 가서 잠시 곰곰이 생각해봤다.


"9평 외부 신청이 막혔다면... 학원 내원생 9평 응시는 안 막혀있잖아?"


생각치도 않은 대안이 떠올랐다.



그리고 연이어 갑작스럽게 의도치않게


필자는 선택의 갈림길 바로 앞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대로 깔쌈하게 털어버리고 2학기 진행"


"휴학하고 학원등록 후 9평 응시... 그건 곧 휴학반수이자 16수능 응시..."



리스크를 원천봉쇄하는 대신 미련을 가진다는 것을 감수하느냐


미련을 털어버리고 일종의 도박을 감행하는 대신 리스크를 감내하는 것이냐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필자는 감정에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내 약점은 영어니... 공인영어시험은 압도적으로 불리하지만 수능영어는 할만하다."


"이번에 학점도 망한 듯 싶은데..." (아니었다. 성적표가 며칠만 더 일찍 떴더라면 반수결정에 대해 결정적 제어장치가 되었을 정도의 성적이었다.)



"의대에 어차피 평생 미련을 가질 거... 안하고 후회하느니 시원하게 말아먹더라도 일단 저질러보자."


필자는 승부수를 띄우기로 결정했다.



갑작스레


이 모든게 하루도 안 돼서 일어난 일이었다.


무언가에 마치 홀린 것처럼 말이다.



"엄마. 나 학원 등록하고 반수하기로 결정했어. 지금 당장."


거의 통보에 가까운 말에 엄마는 당연히 기가 찬 상태로 말을 했다.


"아니 갑자기 돈을 내놔라 이러면 하늘에서 돈이 쑥 떨어지냐?" (죄송합니다)



이윽고 진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대학원가서 교수 테크트리 밟는거 지원 충분히 가능하고... 저번에 말한대로 피트로 약대가는 법도 있고... 네가 지금 다니는 고려대도 남들은 못 가서 안달인 학교인데, 이러면 다들 배부른 소리라고 해. 진짜로."


사실 맞는 말이긴 했다.


"뭐 교수될 때까지 아빠가 경제적으로 버틴다는 보장도 없고... 교수 되는 것도 쉽지 않잖아요... 그리고 피트도 인강 하나 들으려 하면 엄청나게 비싼데 그걸 적어도 일이년하는거니까... 어떻게 보면 수능으로 의대가는게 더 싸게 먹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네가 만약 실패한다면... 한 학기랑 돈만 날리는 거잖아?"


"이게 평생동안 의대에 대해 미련을 가지고 살 것 같은데...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계속 의식이 되거든요. 만약 진짜 이대로 시도 안 하고 그대로 가면 나중에 후회가 될 수도 있잖아요 엄청..."



"나중에 내가 왜 그때 안 했을까 하고 원망도 할 수도 있고... 차라리 시도를 해서 실패를 하더라도 인생 전체로 보면 후자가 훨 나은 것 같아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실패한 것보다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후회가 더 크다잖아요... 가지 않은 길이란 말도 있고"


"그래도... 남들이 네가 반수한다고 말하는거 들으면 뭐라 그러겠냐. 배가 불러터졌다 이 말 분명히  해."


"엄마. 남들이 대학갈 가능성 다 없다고 할 때, 재수 다 왜 하냐고 할 때, 나는 했잖아. 성공했잖아. 남들이 하는 말대로 했다면 이런 성과도 없었어요."


"그렇지만..."


"엄마. 남들이 죽으라고 하면 죽을 건 아니잖아. 어차피 내 인생은 내가 사는거니까 내가 원하는대로 사는게 맞고... 기적 이미 한 번 만들었었잖아. 한 번 만들었는데 두 번이라고 못 만들겠어?"


"그렇지만 이게 마냥 막연하게 할 것도 아니잖아."


"엄마. 내가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분석해보니까 작년에 화학I이랑 국어 말아먹은게 결정타였잖아. 잠 이번에는 잘 자서 국어 안 말아먹고, 화학I 버리고 다른 과탐하면 의대는 가능하다니까? 어느 의대를 가느냐가 문제지, 의대는 무조건 가능해요."



결국 오랜 설득끝에 반수에 필요한 금전적 지원(학원비,급식비)를 받을 수 있었다


이 모든게 2015년 6월 29일 월요일, 그 하루만에 일어났던 기억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갑작스럽게 결정하고


갑자기 밀어붙이고 갑자기 진행하고


뭔가에 홀린 것처럼 행동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분명 나 자신이 결정한 행보였고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여기저기 그 신호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내가 못 이룬 꿈에 대한 아련한 미련 말이다.



그리고 그 미련은


방아쇠가 되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갑작스레 양지로 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 못 이룬 꿈을 


이제는 이루기 위해


또 다시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말이다.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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