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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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를 해봅시다.
12월- 주변 지인들의 합격소식이 들려옵니다. 이럴때는 꼭 아버지 친구 자녀들, 어머니 친구 자녀들이 왠지 모르게 좋은 대학에 붙는지 모르겠네요. 가끔씩 크리가 터집니다. 나보다 모의고사 못보고 내신 안나오던 애들이 수시전형을 통해 좋은 대학에 붙네요. 수시 전형에 대한 불만이 폭발합니다.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하려하지만 마음속에 생긴 울분을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1월, 2월- 시끄럽던 수시철이 지나가고 sns엔 온통 예비대학생들의 여행사진과 수시합격생 모임과 같은 즐거움으로 도배가 되죠. 홧김에 sns를 탈퇴하고 공부를 하려 마음을 먹지만 이미 싱숭생숭. 업친데 덮친격으로 하필이면 우리나라 명절인 설이 존재하는 까닭에 친척들로부터 듣는 '결과는 어때?','그냥 대학가지 왜 또하는거래?','다시 한다고 오르겠어?'와 같은 말들은 가슴에 비수를 꽂아주죠.
게다가 설 즈음에는 열받게도 정시발표가 있죠. 그냥 밑져야 본전이다 식으로 넣은 대학에 합격해도 흥도 없고 친구들, 어머니 아버지 친구분들 자녀들은 대학을 잘만 가네요. 아마 이때쯤이면 자존감과 의지력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죠
3월- 재종반을 다닌지 한달이 되어갑니다. 이제 추합도 끝나고 마음도 어느정도 다시 다잡고 시작을 하네요. 곧 3월 모의고사를 보고 성적이 나옵니다. 듣도보도 못한 등급들이 뜨네요. 아 재종학원 내의 등급이라 그런거라고 애써 전국 환산 점수를 봐요. 꽤 잘나온거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그러나 부모님 눈에는 학원 등급밖에 안보이죠. 12월부터 학원 보내놨더니 지금 뭐하고 있는거냐, 이게 성적이냐, 발로 해도 그거보단 잘하겠다 등등 억울한 소리만 들어서 의지가 확 떨어집니다. 게다가 뭔 놈의 반 애들은 공부를 그리 잘하는지 기가 한번 더 죽습니다.
4,5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선생님들 따라다니며 모르는거 묻고 따로 문제집 받아서 풀고 2월에 세워두웠던 계획대로 착실히 되어가는 거 같습니다. 그러나 대학생 친구들은 미팅이다, 소개팅이다, 축제다 하면서 봄을 만끽하죠. 창밖을 보면 한숨 밖에 안나오네요. 하지만 기왕 시작한거 끝을 보자고 공부에 매진해봅니다. 물론 이제 슬슬 주변 애들과 말을 트고 친해지기 시작하죠.
6월- 기점을 한번 찍어줍니다. 같은걸 6개월 반복하고 오니 현역애들은 그냥 찍어누르고 상위권을 맴돌게 되죠. 기분이 좋네요. 뭔가 열심히 한 보람도 느끼고 하면 되는구나 싶으니 이제 막 친해진 반 친구들과 가볍게 놀러가요. 집에선 부모님들도 꽤나 놀라워하시며 칭찬을 해주시죠
7,8월- 풀어집니다. 내 스스로도 내가 풀어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는데도 풀어지죠. 왜냐? 6월을 잘봤거든요. 하면 된다는걸 알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지금 좀 이러고 있어도 공부만 시작하면 성적이 오른다!라는 착각아닌 착각을 하고 말죠. 자 이제 슬슬 주변의 이성이 눈에 들어오고 커플들도 생깁니다. 물론 학원에서 보는 모의고사 성적은 6월과 비슷하거나 약간 하락하는 수준에서 머물죠. 그동안 해온게 있으니까!
9월- 평가원을 봅니다. 나쁘지 않게 나왔어요. 6월보다 좀 안나온거 같은데 작년 수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나온거거든요. 역시 나는 하면 되는구나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한 두 과목씩 슬슬 소홀해지는 과목이 생기고, 학원 수업은 귓등밖, 나는 내길을 걷는다라는 아이들이 생기죠. 몇명은 자습시간이 모자라다고 주간반에서 야간반, 주말반으로 옮기네요. 뭔가 혹해서 나도 한번 옮기면 어떨까 생각을 해봐요
아 물론 수시도 접수해야되요. 재수이후니까 논술 말고는 딱히 쓸 전형이 없지만 내 점수를 생각하니 의대 다 써도 아까울거 같지만, 작년을 생각하며 안전하게 2군데 쓰고 나머지는 상향해요. 그리고 나선 1차 논술을 곧 보고는 최저만 맞춰도 붙을거 같아져요.
10월- 아 슬슬 지겨워요. ebs영어 지문만 보면 토할거 같고 수학 기출은 문제만 봐도 답 나올거 같고, 국어는 예상 지문만 스윽 보고, 과탐은 문제만 슬슬 풀면서 실전 연습을 하게되죠. 근데 뭔가 살짝 불안해요. 내가 확실하게 3,4,5월 만큼 열심히 하지 않은 게 찔리거든요. 그치만 그래도 작년보다 열심히 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다시 문제를 풀어요.
11월- 수능을 봤어요. 실수를 너무 했나봐요. 점수가 6,9월보다 덜 나왔어요. 최저는 간신히 맞춘거같은데 평소에 원하던 대학과는 멀어지는 기분이네요. 재수 실패했다는 생각밖에 안드네요. 최저 맞춘 대학 논술을 보며, 다시 하면 더 잘하지 않을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네요.
아, 물론 이런식으로 +1을 하는 분들은 얼마 없을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보통 6월을 기점으로 흔들리게 될거에요. 성적 잘나오거든요. 생각을 해봅시다. 현역들은 대다수가 6월 시험 범위를 처음 배우는 거고 +1님들은 그 시험범위만 적어도 1년은 더 공부하고 반복한 사람들이에요. 결과가 잘나와야 정상이 아닐까요? 심지어 6월 전까지는 10시간 넘게 혼자 공부하고 복습하니 못보면 안되는거죠. 하지만 일단 눈앞에 좋은 성적이 들어옵니다. 이유를 잊게 되죠. 내가 공부를 열심히 했으니까 오른거다.
장담 못합니다. 본인이 공부를 열심히해서 오른거다.... 공부를 열심히한다라는 자체가 성적을 보장하진 않습니다. 성적은 시간에 비례하긴 합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하지만 시간'만' 비례하는게 아닙니다. 시간보다 공부의 효율과 공부법, 이 둘이 좋은 사람은 공부 시간을 반토막 내도, 두배로 공부시간 가진 사람보다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이 높죠.
예전엔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라고 했죠. 지금은 효율 싸움이에요. 1시간을 공부를 해도 어떤 공부를 어떠한 방식으로 어떤 집중력으로 하는가. 고3보다 재수때 분명히 더 열심히 한다고 느껴요. 공부시간은 늘고, 본인 스스로가 열심히 하니까요. 근데 수능 끝나고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스스로에게 만족을 할만큼 열심히 했는가?'
'어떤 성적을 받더라도 후회없을 만큼 원없이 공부를 했는가?'
분명히 이부분에선 조금 더 열심히 할 수 있었고, 이부분을 놓쳐서 아깝다 이런 생각이 들거에요. 그러니까 +1을 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것이구요.
또 다시 하면 분명히 그전보다는 열심히 해요.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돌아보고 하는거니까. 하지만 그 노력보다 더 할 수 있다는건 끝나고 나면 알아요. 하다보면 소홀해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놓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1의 싸움은 누가 1년을 더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더 많이 채워왔고, 덜 부족한 상태로 시험을 보느냐의 싸움 같아요. 완벽했으면 +1을 하지 않았겠죠. 잘 생각하세요. 1년 짧지만 길어요. 얕은 의지로 덤비면 1년 허송세월 됩니다.
명심하세요. +1하는 동안 당신이 완벽한 순간은 수능날이지, 그전까지는 단 한순간도 완벽한 모습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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