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참새 [430033] · MS 2012 (수정됨) · 쪽지

2014-01-10 01: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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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합격을 기다리시는 분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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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재수 끝에 13학번으로 대학재학중인 대학생입니다. 동생이 아직 수험생임에도 입시제도에는 전혀 신경안쓰고 우직하게 공부만 하는 스타일이라 오빠인 제가 아직도 오르비를 하고있네요.

가끔 들어와서 질문글 올리시는 분들께 답변하거나 조언하는 식으로 글을 썼었고 연대논술발표를 앞두고 긴장하는 수험생들께 글을 썼던 기억도 나네요. 오늘은 정시합격을 기다리는 분들께 제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이 글을 14학번이 아닌 13학번인 제가, 그것도 지금에서야 쓰는 이유는 제 이야기가 정말 극적이라고 생각해서에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우연히 추가로 알게된 이야기도 있구요.

지금 쓰는 이 글은 특별히 재수는 상상도 하지않고있는 현역분들이 읽으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재수는 절대 하기싫은데 정시발표를 기다리는 상황이 초조한 분들이 분명 많으실꺼에요. 그런 분들에게 어쩌면 이 사람같은 상황도 올 수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글을 가볍게 읽으시면 어떨까싶어요.

2012학년도 수능이 끝나고 제가 받았던 언수외 등급은 222였습니다. 백분위가 93 89 91로 무난한 2등급이었던것으로 기억하구요. 제가 그 당시에 알고있던 대학은 외대와 시립대 정도까지였습니다. 딱히 서열을 외우지도 않았던 시절이구요. 그 때 제 성적으로 담임선생님께 추천받은 대학이 숭실대와 동국대였습니다. 나름 기독교신자인지라 대학의 위상의 차이가 크지 않다면 기독교대학인 숭실대학교를 쓰겠다고 말씀드렸고, 그게 제 드라마틱한 정시발표의 시작이었습니다.

숭실대의 한 학과를 쓰고 나군에 건국대, 다군에 한동대를 썼는데 나, 다군은 예비번호도 없는 탈락이었습니다. 결국 희망이 가군이었는데 처음 발표때 받았던 번호가 예비 5번이었습니다. 정원이 약 20명정도였구요.
예비번호를 받자마자 최근 5개년의 추합현황을 봤습니다. 매년 이변없이 예비7번과 8번까지 합격이 되는 통계결과를 보고 저는 안심했습니다. '추합 2차 쯤에 합격하겠구나..원서 잘 썼어'..

그리고 드디어 추합 1차 발표가 났습니다. 결과는 예비3번.. 두 명이 빠져나간 거죠. 다소 초조했습니다. 적어도 네 명정도는 빠져야 2차에서 합격할 것이라는 제 시나리오가 살짝 어긋났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평정심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결과를 확인하고 친구들끼리 부산여행을 갔고, 여행에서도 내내 대학생각이 났지만 멘탈 단련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편히 놀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여행이 끝나고나서 났던 추합 2차발표. 예비번호는 "2번". 또다시 한명이 빠져나갔습니다. 이 때부터 저는 정말로 긴장에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상황이지... 숭실대를 비하하는건 아니지만 분명 숭실대 위에 있는 대학들이 꽤 있고, 거기서 추합이 일어나면 그 밑은 연쇄적으로 반응이 일어나야되는게 아니냐는, 지금 생각해보면 순진한 생각들을 했었어요. 그럼에도 추합은 4차에서 5차까지 있기때문에 아직 절망하기엔 이르다는 자기위로로 또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추합 3차발표, 예비번호는 그대로 2번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이제 끝난게 아니냐고 저에게 물어보셨고 저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아니에요..ㅎㅎㅎ 아직 2차례나 발표 더 남았으니까 쫌만 더 기다려보죠.."라는 말로 부모님을 안심시키면서 동시에 저 자신도 안심시켰습니다.

대망의 추합 4차발표, 예비번호는 1번.... 드디어 한명만 더 빠지면 난 올해 대학을 간다.라는 생각으로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미 오티는 물건너간상황었습니다. 추합 3차에서 합격해야만 막차로 오티에 참가할 수 있었는데 비록 오티는 가지 못하겠지만 대학에서 날 붙여주기만 한다면 용서해줄수있을것만 같았습니다. 마지막 5차발표는 흔히들 말하는 "전화찬스"였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은 이미 대학합격과 재수라는 두 가지 기로에서 자신의 길을 선택한 상황이었고, 전화찬스를 기다리는 친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제 친구들은 당연히 전화찬스니까 예비1번은 그냥 합격시켜준다는, 그 당시에는 저에게 그것보다 더 큰 위로가 없는 말들을 해줬습니다. 그 말만 믿고 전화찬스 발표날 아침 9시부터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있었습니다.

저녁 9시가 지나고, 10시가 다 되어가고도 제 번호로 연락이 안왔습니다. 기다리다못해 저는 학교입학처로 전화를 했습니다. 드디어 입학처 관련 사람이 제 전화를 받았고, 제 첫마디는 이것이었습니다.
"왜 전화가 안오죠?"... 그 사람은 "합격하신 수험생들을 대상으로한 전화는 끝났는데요?"라고 답을 해줬습니다. 저는 너무 황당해서 "예비1번인데 불합격이라고요?"라고 응했고, 그분의 한마디는 2년이 거의 지나가는 지금에서도 제가 기억할만큼 충격이었습니다. "네 예비1번도 많이 떨어집니다."

결국 그렇게 파란만장했던 저의 정시발표기간은 지나갔고, 그 다음날 지체없이 서울로 올라가 재수학원 종합반에 등록을 하고 학사에 등록을 했습니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날 그 감정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와... 내가 재수도 다하네.. 재수 절대로 안하려고 수험생활 내내 들어보지못했던 대학에 원서를 넣었는데 거기도 날 안받아주구나..내가 정말 수능을 못보긴 못봤나보다..

이미 재수를 선택한 친구들은 기초를 탄탄히 밟아가고 있을텐데 2월 말에야 재수공부를 시작하는 내가 잘 할 수있을까..시작부터 손해를 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았어요. 사실 재수종합반도 일주일전에 개강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마 2013학년도 수능을 준비하는 재수, N수생중에는 제가 거의 제일 늦게 시작한 편이었을거에요. 물론 반수생들을 제외하구요.

재수생활이야기는 너무 길기 때문에 간략하게 평가원성적과 수능성적만 말씀을 드리려구요. 6월 평가원에서는 221을 받았고, 9월 평가원에서는 222를 받았습니다. 현역수능성적과 별반 크게 다를게 없었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수험생에게 제일 중요하다는 시험 3개가 6평, 9평, 수능인데 나는 이미 앞선 두 개의 시험에서 망쳤기 때문에 수능은 잘 볼수밖에 없겠다 라는 생각.... 어떻게보면 말도안되는 말이지만 저는 자기암시를 계속 그렇게 했어요. 수능은 잘 볼수밖에 없다라는 생각.. 사실 수능난이도 예측만큼 한심하고 하면 안되는 행위가 없지만 그당시의 저는 지푸라기라도 붙잡고싶은 심정이었기에 난이도 예측을 했습니다.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9월평가원에서 언어가 매우쉽고 수리가 다소어려웠고 외국어가 다소 어려웠기 때문에 자신있는 언어와 외국어는 매우어렵게 나올 것이고, 수리는 쉽게 나와야만 평가원이 욕을 먹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마인드로 9평이후에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치른 2013학년도 수능 결과는 언수외 111 총점 296점이었습니다. 언어와 외국어에서 동시에 100점을 받은것은 수험생활동안 처음이었고, 언어의 경우 100점을 맞은 것이 중고등학교, 재수생활을 통틀어 처음이었습니다. 수리의 경우 마지막 30번 문제를 다 풀어놓고 덧셈을 잘못해서 틀렸구요. 저는 아직도 제 수능점수가 믿기지않습니다. 아마 그날 제 몸의 컨디션이 완벽했거나 수능문제들이 저에게 잘 맞는 문제들로 출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연대논술을 수능 전에 미리 치른 상황에서, 우선선발을 충족시킨 상황이기에 기대를 했습니다. 매일같이 오르비에 들어와서 제가 쓴 학과를 저처럼 기다리는 수험생들이 있는지 자주 찾아봤구요. 많이는 없었지만 우선선발을 맞추었다는 수험생들을 보면서 긴장도 많이하고 일반선발이라는 수험생들을 보면서는 나도 언어 3점짜리를 하나라도 틀렸으면 일반선발대상이었겠구나하며 안심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논술 우선선발로 제가 중학교1학년때부터 원하던 학과에 최종적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알고있던 상황이었구요.. 지금부터 쓸 이야기는 얼마전에 친구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제가 숭실대학교 OO학과에 예비1번으로 최종불합격하고 재수종합반으로 들어가고 약 한달 뒤에, 친구가 다니던 마이맥대성학원에 숭실대 OO학과에 막차를 타고 합격했던 학생, 그러니까 제 바로 앞번호를 받았던 학생이 들어왔다고합니다. 알고보니 합격을 하고나서 3주정도 학교를 다니다 자퇴를 하고 재수를 결심했던 거였습니다.

저는 너무 황당해서 그 친구에게 그럼 그 당시에 왜 나한테 알려주지않았냐고 물어봤더니 그 친구는 내가 재수초기에 그 말을 들었으면 허망하고 안타까워서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을꺼라고 말을 하더군요. 그 말을 들으니 정말 맞는 말이라 정말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나니 그 학생의 결과가 어땠을지 당연히 궁금하기에 물어봤습니다. 여담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친구는 재수에서 현역보다 더 낮은 성적을 받아서 다른 대학에 진학할꺼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세상이 정말 좁다는 생각을 많이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그 친구가 처음부터 숭실대에 등록을 하지않고 재수학원으로 갔다면 아마 최종합격은 내가 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생활하고있을까.. 아마 반수를 한답시고 과생활도 제대로 못하고 수험생활도 제대로 못하지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마 제가 지금 다니고있는 연대에 오지도 못했을 것이고요...

꽤 긴 글인데 다 읽은 분이 많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라도 마음에 위안을 얻는 수험생들이 많았으면 합니다. 제가 만약 현역으로 대학에 합격했다면 지금 다니고있는 이 대학엔 분명 절대로 올 일이 없었을 꺼에요. 만약 여러분이 정말 간절히 바라는 대학이 아니라 수능성적에 맞추어서 일단 대학에 붙자라고 생각을 한다면, 불합격을 확인했을때 제 이야기를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전화위복의 계기를 맞이하는 순간일수도 있거든요. 2월 초, 혹은 중순까지 합격만을 기다리는 그 순간들이 정말 짜증나고 고통스러울꺼에요. 하지만 분명 모든 일에는 계획이 있고 뜻이 있을꺼라는 생각을 하셨으면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제 동생이 읽지는 못하겠지만(오르비의 존재도 모릅니다;;) 그래도 합격을 기다리는 동생들에게 형, 오빠의 이야기로 한번쯤은 들려주고싶었던 이야기라 매우 긴 글이지만 쓰고나니까 후련하긴하네요.
글을 쓰고나서 수정하지않을 꺼같아서 아마 두서없고 무슨 말을 하려는거야 하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글이 많이 부족해도 봐주셨으면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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