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gult [391102] · MS 2011 · 쪽지

2013-02-03 15: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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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학원에서 재수, 그리고 성공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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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여기 글을 올려도 될만한 사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ㅜㅜ 그래도 이맘때에 오르비에서 성공수기를 보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수기를 씁니다. 올해 입시에서 서울대 인문, 연대 사회, 경찰대 최초합 했고, 수능은 서울대식 기준 0.06프로 입니다.

1. 나는 자사고에 입학했다.
중학교 때 저는 공부를 꽤 잘하는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우연히 치른 현대청운고 시험(당시 경쟁률 13:1 이었습니다) 에서 기대도 안했지만 합격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저를 정말 대단한 놈이라 여기며 기고만장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상은 입학후 치른 모의고사에서 박살납니다. 당시 언수외 221을 맞고 전교 150등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전교생 180명) 학교에서 이름가리고 성적순대로 붙여놓기 때문에 제가 위치한 자리는 늘 세번째 장이었고 처음에는 충격이었지만 으레 무감각 해지면서 나태하게 지냇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첫 내신시험에서 수학 7등급을 맞고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신 수학이 안 좋은 아이들은 향상반이라고 따로 방과후 반을 개설했는데 거기에 거의 1년동안 상주했습니다. 정말 솔직히 말해서 기분이 더러웠습니다. 그리고 쪽팔리기도 하고 집에가면 늘 고생한다고 맛있는거 해주시는 부모님께도 죄송스러웠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때 "니 내신 성적표는 2학년 때부터 볼게. 충분히 해낼거라고 믿는다. 지금 안좋아도 니 성실성을 믿는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제 나태함은 곧바로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제 4년간의 수험인생을 바꾼 학생이 등장햇습니다. 일요일 오후 자유시간에 저는 정석을 풀고 있었고, 같은 교실에는 이과지망생인 제 친구가 같이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후 다른반의 학생이 들어오더니 뭐하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공부하고 잇는거 안보이냐고 햇더니 하는 말이 "니가 무슨 공부를 하노? 별로 못한다 아이가 공부는 j가(앞서 언급한 제 친구)가 해야지" 였습니다.
 이말을 듣고 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부모님에 대한 죄송스러움, 그리고 제 중학교 단짝친구들이 떠올라서 울뻔햇습니다. 깨알같은 자존심이 없었다면 울었을 것입니다. 그날 밤에 기숙사에 와서 새벽까지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내가 나태하게 보내고 멍청해 보였으면 저런 말을 했을까? 돌이켜본 6개월 간의 시간은 제가봐도 한심스러웠습니다. 잠올때 자고  심심하면 농구하러 가고 수업시간에 졸고 주말에 밖에나가서 놀고.
 이런 개같은 일상을 반복하다간  음식만 축내는 쓰레기가 될 것만 같았고 , 부모님의 등골만 빼먹는 쓸모없는 인간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 고1 6월달에 저는 또다시 모의고사 성적이 바닥을 찍습니다. 160등 정도였고 내신수학은 반에서 꼴지. 그 시즌에 메가스터디 손주은 대표가 학교에 왔었습니다. "자살할 각오로 공부해라"  저는 그 분을 존경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말을 계속 되뇌었습니다. "자살할 각오로"
 그리고 다음날  "일등급 수학, 특작, 한수위 수학, 기출문제집"을 사고 여름방학때 까지 다 풀겠다는 각오를 햇습니다. 진짜 다 못풀면 학교를 자퇴하고 죽겠다고. 6월부터 8월까지 , 그리고 중간에 여름방학까지 저는 매일같이 새벽 2,3시에 잠들었고 아침 6시 반에 기상햇습니다. 그리고 5번째 정도로 등교하여 아침도 거르고 90분의 아침 자습을 언어에 할애했습니다. 졸려도 절대 자지 않았고 , 책상을 교실앞에 붙이고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 까지 닥치고 수학만 팠습니다(영어는 조금만 했었고 이게 결국 고3때 제 발목을 잡습니다) 당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진짜 개같이 수학만 풀어댔으니까요. 저 문제집들은 아마 저때 2회독정도 했던것 같습니다.

2. 고등학교 두번째 시기
 이렇게 정신없이 공부하고 처음맞는 V사  사설모의고사. 저는 제 성적을 확인하기 위해 평소와 같이 3번째 장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10분간 봐도 제 성적이 없었습니다. 혹시하고 2번째 장을 봤더니 중간에 있었습니다. 89등. 정말 뛸듯이 기뻤습니다. 초라할지 몰라도 바로 올랐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담임선생님도 칭찬하셨습니다. '노력하더니 많이 올랐네"  그렇게 방학이후 첫 모의고사를 잘 치르고 나서 9월 학평을 치게됩니다. 유난히 그날따라 느낌이 달랐습니다. 수학이 다 풀리기는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언수외탐을 다 매기고 2번째 장을 보니 제 성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설마 하면서 첫번째 장 맨 밑을 보았더니 거기도 없었습니다. 점점 눈을 올리고 첫번째 장의 윗 부분에 제 성적을 확인했습니다. 19등 . 제눈을 못 믿었습니다. 그것도 탐구포함이 아니라 언수외만 해서 19등이라니. 그때 반 3등을 했습니다. 주변에 저보다 잘한다던 이과학생들도 저보다 점수가 낮더라구요. 여전히 내신은 오르지 않았고, 그냥 서울대는 포기하자는 심정으로 다른 과목 내신에만 집중했습니다. 수학은 내신 6등급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다시 겨울방학을 맞이하게 되고 여름방학 못지 않게 언수외를 미친듯이 팠습니다. 아침 자습시간 언어, 점심부터 저녁 전까지 수학, 자기전까지 외국어. 1,2월을 그렇게 똑같은 사이클로 달리니 금방 2학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친 3월 학평.... 또 수학은 다 풀렸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성적을 확인하자 고교입학후 최고의 성적이 나왔습니다. 인문계열 2등. 그 이후에 저는 전교에서 노력형 실력파로 소문을 탑니다. 내신도 문과내에서 5등정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저를 재수로 이끈 악마. 자만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3. 인강에 중독되고 상담의 맛을 알았다.
 그 이후에 친 시험에서도 줄곧 3등내에 계속 포진을 하게 됩니다. 그럴수록 1학년 방학때 지녔던 독기는 없어졌고 설렁설렁 하면서도 잘하는 타입이 저라고 생각하면서 슬슬 풀어졌습니다. 그때 저를 유혹한 것이 '인강' 이었습니다. 스타강사라 불리는 분들의 강의를 보면서 점점 학교수업은 등한시 했습니다. 그래도 내신이 그럭저럭나오길래 더욱더 수업을 안들었고, 자습시간의 상당시간을 인강수강에 할애했습니다. 내실있는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는 인식은 전혀하지 않고 마치 전국 최고의 방법론을 체화하고 있는 것 마냥 들떴습니다. 여러문제집을 열심히 풀고있는 친구들을 비웃으며 "그거는 틀린 방법론이라고' 라고 하며 기고만장해져 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국 고교생 생활법 경시대회'에서 전국 10위로 입상합니다. 당시 고2 중 제가 전국 1등이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저는 점점 더 저를 완성된 존재라 착각하며 살게 됩니다.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죠. 단순히 운이 좋았고, 시험에 익숙해졌을 뿐 제 실력은 탄탄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적, 인생 상담이랍시고 기숙사에서 새벽 2,3시 까지 이야기하며 썰을 풀면 정말 뇌가 충만해진 기분이 들었기에  계속 상담을 빙자한 잡담을 나누게 됩니다. 이 버릇은 고3 현역 막바지까지 지속되었고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고3에 올라와서는 초반에 나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3,4월 학평도 전국 2자리 수에 들었습니다. 그러자 이내 다시 자만하게 됩니다. 6,9평은 잘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전에 최고의 성적을 거둔 모의고사를 상기하며 "그게 내 잠재력이다'라는 개헛소리를 합니다. (여담을 하자면 6,9평이 자기 현재실력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대학을 결정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모의고사도 마찬가지로 실전 적응용이지 당신의 실력을 100퍼센트 반영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수험생들이 모의고사를 반성의 기회로 삼지않고 잘 친 시험만 기억하죠)

4. 첫 수능에서 ko패 
 
평소 저를 강심장이라 생각했기에 수능때도 떨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근데 12시에 잠들어서 새벽 2시에 깹니다.그 이후 6시까지 한숨도 못 잤습니다. 언어는 EBS를 보지말라는 인강강사의 진심어린 충고로 인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쓰기 10번인 내소사 꽃살문양 문제에 10분을 쓰고 11,12번 쓰기를 내리 다 틀립니다. 비트겐슈타인 지문에서 10분 , 이어폰 지문은 10분 쓰고 다 풀지도 못헀습니다. 1교시 종료에 딱 맞춰서 마킹을 끝넀고 망한 것을 직감했습니다. (바보같이 당시에 1차 경찰대를 붙은 상황이어서 망해도 경찰대는 갈 줄 알았는데 대기번호 107번 받앗습니다.) 이후 만점이 나오던 수리도 1개를 틀렸고, 외국어 탐구 2외국어 모두 평타를 쳤지만  2등급 컷에 걸린 언어점수로 제가 당연시 생각했던 연고대는 꿈도 못꿨습니다. 그래서 저는 쿨하게 재수를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무감각하게 지내다 경찰대 대기번호를 받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수시도 다 떨어졌습니다.  제 자신이 무력해 지더군요. 당시 28명 정원인 저희 반에서 서울대만 6명이 나왔고 제 친한 친구인 1학년 때 룸메이트 역시 언어 1개를 틀려 고경에 무혈입성합니다. 친구들이 잘 되는 것은 기뻤지만 제 자신이 호구가 되자 화가 나더군요. 그래서 2월 재종반 개강 전까지 독서실에서 9~ 저녁 11시까지 언수외 기출만 풀었습니다. 
 졸업식 때 2년동안 담임선생님이셨던 분의 마지막 종례를 들으니 부끄러웠습니다. "3년동안 열심히 한다고 수고했다"    저는 열심히 안했는데 말이죠. 부끄러워서 선생님들께 인사도 못드리고 빨리 빠져나왔어요.

5. 재수가 실감이 안난다. 그래도 다행이다 내가 고3때 호구여서
 기숙학원을 다녔기에 부모님과 헤어지는 그 기분은 말로 표현못할 정도로 뭐 같습니다. 마지막에 집에 가실때 웃으면서 화이팅 했는데 정말 비극적이었습니다.ㅋㅋ 입소 당일에 샤워하고 침대에 누웟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안 울고 싶었는데 계속 눈물이 나왔습니다. 슬프다기 보다는 실감이 안났습니다. 또 수능을 준비하다니.
 그렇게 한 일주일 동안은 공부가 손에 안잡히더라고요. 책상에만 앉아있었어요. 반 친구들도 분위기가 다 암울했기에 침묵의 장이었어요. "아 내가 왜 다시 수능을 해야되는 건가?" 별다른 실패를 경험해본 적도 없었기에 재수라는 상황은 더욱 짜증날 수밖에 없었어요. 첫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열심히 했는데도 망하면 어떻게 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진짜 죽도록 했냐? 라고 반문하시더군요. 할말이 없었어요. 저는 재수를 쿨하게 결정했으니까요. 그만큼 공부를 죽을 만큼 하지 않았던 거죠.  
그리고 또 하시는 질문 "질문은 많이 다니고 문제를 많이 토론해 봤냐?" 또 할말이 없었어요. 저는 진짜 양치기만 했고 인강의 방법론만 줄기차게 주입했지 , 한번도 언어 외국어의 문제를 메모하며 정리하지 않았으니까요. 이때 선생님의 조언이 없었다면 고3의 연장이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분명 공부방향과  시간, 태도가 모두 잘못된 결과가 수능 패망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어 주신 것에 지금도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긴장감, 멘탈때문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지금도 단순히 멘탈의 문제때문에 수능을 망했다고 하는 후배들의 대다수는 저같은 과정을 밟았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글을 제가봐도 정말 못썼습니다. 질문있으시면 리플로 해주셔도 되고 쪽지도 됩니다. 다시한번 글을 못써서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각 과목 공부법과 이미지 트레이닝, 경찰대 1차 고득점, 서울대 논술 준비등의 내용을 올리겠습니다. 저와 같은 과정을 밟으셔서 수능을 못 치신 분들이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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