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아마도 가장 신을 원망하게 될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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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과생입니다. 이제 수능을 마쳤고, 현재 한국사능력시험 준비 중입니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주위에서 신에 관한 말을 많이 들으니까 신이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제가 제목처럼, 지금 20살이 된 지금까지 살면서 아마 가장 신을 원망하게 될 일은 지금 저의 수능 성적표 같습니다.
못 나온 건 아닙니다. 오히려 잘 나온 편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111 311 나왔습니다. 지금 의대 3개 썼습니다.
못 친 분들이 보면 돌 던질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 제 심정으로는 차라리 돌을 던져줬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고요.
고 1때는 의대를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고2와 고3을 거치면서 내 주제에 무슨 의대냐 하면서 의대 생각을 접었는데, 성적표를 들고 학원과 인터넷을 돌며 찾아보니 하위권 의대는 넣으면 최초합격인 성적이라더군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제가 지방에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울 학원까지 찾아가서 물어보니까(돈이 미친듯이 깨졌습니다)거의 똑같은 대답을 하더라고요.
저는, 솔직히 고백하건대 정말 많이 놀았습니다.
수능 50일 전쯤에 소설을 빌려 읽은 적도 있었고, 한 한 달인가 전쯤에는 부모님 몰래 PC방도 몇 번 찾아갔습니다.
책상에 앉아 시간을 멋대로 흘려보낸 적은 셀 수도 없고, 심지어 수능 며칠 전, 그리고 하루 전에도 도저히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쓰잘데없는 글을 공부는 한 자도 안 하고 써제꼈지요.
외국어에서 한 네 문제인가를 찍었을 때, 화1에서 끝나는 시간이 기억이 안 나서 거의 패닉상태에 빠졌을 때, 생2에서 가장 어려운 난이도의 문제를 찍어야 했을 때 저는 저 제 자신에 대한 확신이 땅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저 자신에 대한 반성을 했고, 가채점 나오는 거 보고 재수를 할까 말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언어와 수리는 그럭저럭 한 것 같은데 하면서, 마음을 비우며 가채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저를 기함하게 했습니다.
언어는 만점, 수리는 한개 틀렸고, 외국어는 세 개를 틀렸는지 네 개를 틀렸는지(외국어는 답을 덜 적었거든요)하고 과탐은 폭망한 화1 한개 빼고는 둘다 1개씩 틀렸더군요.
이게 제 성적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가채점 성적을 불렀을 때 겨우 실감이 좀 나더라고요.
고3 내내 생명과학과나 가야지 하고 생각했던 저에게 의대지원 가능 성적은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했길래 이런 성적이 나왔지?
내가 얼마나 심적으로 나태했고, 얼마나 놀았는지는 내가 잘 아는데?
수능 하루 전까지도 자기 확신 없이 갈팡질팡했던 내가, 의대가 가능한 성적이라니?
운. 그것이 사람을 그토록 교만하게 하더군요.
저는 지금 매우 두렵습니다.
나중에, 중요한 시험이 또 닥쳤을 때, 내가 지금 수능 때 얻었던 운을 믿고 교만해지면 어쩌지?
11월과 12월을 뭐에 쫓기는 사람처럼, 놀면 죽는 사람처럼 현실에서 도피하다가 이제 겨우 정신이 드는 참입니다.
더 이상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저는 이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중입니다.
뭐, 고1때 국사홀릭이었다 엄마의 설득에 넘어가 이과를 선택한 저인지라(지금 크게 불만은 없습니다)1급을 목표로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제게 독설을 날려도 괜찮습니다. 너 대체 뭐하는 왕재수냐 해도, 그게 어느정도 맞는 말이란 건 아니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봐도 제가 한심해지는 건 맞으니까요.
잘 나왔다고 고민하는 인간이라니. 예전 같으면 저도 어이없어했을 테지만 제가 그 입장이 되니 고민하게 되더군요.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저 자신을 다시 가다듬기 위해서입니다.
운이 좋아서 그리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세상은 운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제 엄마는 네 능력이라고 말해 주시긴 하셨지만, 어느 정도는 능력이 있겠지만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운 같으니까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을 위해 공부하고, 영어원서를 보고, 제가 지금까지 공부한 생물 과목을 정리하면서 1,2월을 제발 알차게 보내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잠시 좋은 성적이 나왔다고 기뻐하며 거만해지던 저를 되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논술을 개떡같이 쳐서 수시 다 떨어지고 정시합격 기다리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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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맘 잊지 마시고 좋은 의사 되세요~
님같이 이렇게 뭔가 되었다는것에 감사할줄 알면 다 된겁니다. 운이든, 실력이든간에 다 님을 이루는 것들입니다. 님이 될만한 자격이 있기에 그러한 결과를 손에 쥘 수 있었겠지요. 부디 이런 마인드 잊지 마시고, 훌륭한 의사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맞아요 감사할줄알고 자만하지않는 모습이 정말 훌륭합니다. 저도 지난날을 반성하고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짜아식 넌 된놈이야
이런 이야기 듣고 싶어서 이런 글 올리신 거 아니죠??
정신 잘 차리시기 바랍니다 운이란건 불운이던 행운이던 정신 똑바로 안차리면 사람을 이상하게 만듭니다
글쓴분이 의사 역할을 하는게 앞으로 전개될 삶에서 꼭 필요한가보죠 !! 항상 그 자세로 살면 더 많은 운이 오지 않을까요? 안철수도 보세요. 개인적 역량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운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 많았죠.
스스로가 제일 잘 아는 법인데, 자기자신도 운이라고 생각하면 운입니다. 이번일로 불안해 하면서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하는일은 없으셨으면 좋겠네요. 실력이건 아니건 행운 또한 삶의 일부이니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셨으면 좋겠습니다!
뒈레레레렉 댓글이 7개라니 ㅠㅠ
좀 놀랐어요
댓글써주신 모든 분들, 제 글에 답해 주셔서 감사해요
크레파스님은 특히. 어쩌면 진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요
저 자신의 생각은 저도 잘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아요.
글써주신 오르비분들 모두 화이팅~
더 어려운 시험 보시길
요즘 한국사능력시험은 교만해지는 것을 막기에는 너무 만만한 시험 같습니다
일단 이렇게 스스로 자신에 대해 평가를 내릴 줄 알고 그리고 그럴려고 노력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좋은 자세입니다.. 자신에 대해서 엄격한 반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람에게는 정말로 운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고 좀더 진일보하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좋은 책들을 많이 읽어보세요ㅎ 한국사능력시험은 요새 정말로 쉽습니다 서점에 베스트셀러칸에 하루만에 읽는 한국사(제목이 맞나..?) 이런 류의 책만 심심풀이로 며칠 반복해서 읽어도 70점이상이 걍 나옵니다..ㅠㅠ
그러니 자신의 실력이나 노력이 의심된다면 윗분 말씀대로 좀더 어려운 시험이나 도전적인 일에 자신을 던져보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같이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만두기가 그래요...
제가 그사람 가르치기로 했거든요...
이과주제에...
덜컥 약속했다 지금 후회중요.
가르치기 위해선 확실히 좀더 잘 알아둬야 하니까 현재 한국사 열폭중입니다.
축구선수 박지성의 자서전에 퍼거슨감독의 멘트가 있죠 "행운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라구요...한마디로 운도 실력입니다....자기가 가진 운에대해 자책할필요는 없습니다...님이 실력이 좋아서 간거죠...아니라고 해도 그건 미래에 분명히 밝혀지고 고난에 의해 심판받게 되겠죠...의대공부나 기타 등등.....잡소리는 여기까지구요ㅋㅋ좋은의사되시길 바래요
교만해질까 두려워 이 글을 쓰신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벽을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왕 따라온 운이라면 그 운 놓치지 마시고 더욱 더 끌어올리시길 바래요.
나도 운 좋아서 신 원망하고 싶다.... (재수의 구덩이에 빠져드는 1人 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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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구덩이에서빠져나왔어요 이건공감 44
행쇼
진짜 보통 그 상황이면 거만해지는데 존경할만한 멘탄을 가지고 계시네요 저도 수능때 그랬으면 ㅠㅠ
수능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글이군요ㅋㅋㅋㅋㅋ
앞으로도 겸손함을 잃지 않고 아래사람들의 입장도 고려할수 있는 큰 인물 되시길
만 하루인가 이틀인가 정도 컴퓨터 안하고 있다 들어오니까 대체 이게 무슨일인지...
별로 볼 것도 없는 글에 댓글이 이렇게 많이 달릴줄은 몰랐습니다 ㅎㄱ
n수하시는분들...죄송합니다 댓글때문에 글 지우기도 그렇네요
댓글 달아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해요 모두들
결과는 결과일 뿐. 그냥 받아드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시면 될 것 같네요.
축하드립니다.
현역이신데 정말 존경스럽네요. 요새 제가 생각하던 운이라는 인생의 요소에 대해 다른방면으로 생각 할 수있는 글이네요......
나도모르게 안되면 늘 운 탓으로 돌렸는데,,
고해성사와 같네요 저라면 그냥 좋아라 했을탠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