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지나가는하늘에는 [951759] · MS 2020 (수정됨) · 쪽지

2020-02-08 0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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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하면서 좋아한 사람 얘기 써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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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정시 파이터의 길을 결심했다. 나름 괜찮은 학교를 다니면서 괜찮게 공부했지만, 내신을 잘 챙길 만큼 꼼꼼하고 독한 성격은 되지 못한 탓이다. 서울 하위권 대학도 가지 못할 내신에 비해, 어지간하면 1등급을 놓치지 않는 모의고사 성적은 수시를 포기하기에 충분한 명분이 되어주었다. 나는 거만한 생각에 빠져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부터 수업시간에 수능 기출 문제집을 풀었고, 그 해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최고점을 찍은 후 겨울방학을 글자 그대로 최선을 다해 놀았다. 그리고 고3 3월 모의고사에서 올2등급을 받았다. 너무 충격을 받아 펑펑 울었지만, 내신은 이미 늦었고, 내게 남은 선택지는 여전히 정시밖에 없었다. 담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모든 수업을 째고 내 공부를 했다. 6평까지의 성적은 3월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등급 깔고 1등급 조금 있는 정도. 그러다 7월 학평에서 갑자기 300점 만점에 290점을 받게 되고, 나는 다시 거만해져 여름방학을 정말 글자 그대로 최선을 다해 놀았다. 그리고 고3 9월 평가원에서 23233을 받았다. 이미 그때 내심 재수를 준비했었다. 집안 형편상 재수는 절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 마음이 그냥 그랬다. 흔들렸었다. 


수업 시간에, 정시 6논술 준비 중인 학생들 한번 손들어 볼래? 라고 한 선생님이 말씀하시자 나를 포함한 몇 명이 손을 들었다. 우리를 보며 그 선생님께서는, 너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괜히 객기 부리지 말고 학생부 준비해서 수시로 가라, 고 말씀하셨다. 그때가 수능 120일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개교 이래 서울대를 정시로 뚫은 학생이 단 한 명도 없는 학교였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도 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에, 정시의 가능성을 단 1%도 살펴주지 않는 학교의 태도에 반기를 들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재수가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유명한 ‘대치동’은 뭔가 배우는 게 다를까? 그 유명한 선생님들이 직접 가르치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 나는 지금 환경이 나와 맞지 않아서 성적이 안 나온다고 생각하는 데, 정말 나를 응원해주는 학습 환경에 가면 나도 내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아. 현재의 나는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내 주변과 나 스스로에게 실망하며 100여일을 보냈고, 9평을 망쳤고, 그렇게 가을이 지나가고, 첫 번째 수능이 끝났다.


국수영탐탐 순으로 23332 이었다. 잘 볼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논술 카드 5장의 최저를 단 한 장도 맞추지 못할 정도로 못 볼 줄은 몰랐다. 거만하게 최저 없는 논술을 쓰지 않은 9월의 나를 정말 죽도록 원망했다. 시험을 못 보면 못 본대로 그냥 마음 편하게 천천히 내년을 준비하며 주변 사람을 챙겼어야 했는데, 감정이 너무 상한 나는 수능이 끝난 11월 중순부터 12월까지 좀비처럼 학교에 갔다가 좀비처럼 집으로 돌아와서 누구도 만나지 않고 어디도 가지 않고 집에만 처박혀 내내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긴 시간을 울었나 싶을 정도로 꾸준하게 한 달 반을 울었다. 다른 애들은 논술 최저 간신히 맞춘 주제에 대학 가던데, 나는 왜 이렇지, 나보다 훨씬 못하던 애들 중에 수능 잘 본 애가 왜 이렇게 많아, 우리 집 진짜 여의치 않은데 나 하나 대학 가겠다고 돈을 써대도 될까, 재수가 1년에 2000 잡아야 되는구나, 진짜 그냥 맞춰서 갈까, 이런 저런 생각에 계속 울었다. 사실 다 제치고, 집안 사정이 제일 걱정이었다. 지원해주기 너무 어려우니까 맞춰서 가라, 어떤 대학을 가도 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원서만 신중하게 쓰면 숭실대 낮은 과는 되지 않니? 라고 말하는 아빠한테 내 성적으로는 서울에 있는 대학 못 간다고 울고 불며 재수시켜달라고 말하는 나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정말 주변은 붕 떠있고 나만 깊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긴 씨름 끝에 재수를 허락 받은 나는 그 길로 강남의 한 재종에 조기반으로 들어갔다.


조기반 내내 좋았다. 친목을 걱정했었는데, 시기가 시기인 만큼 모두가 조용했다. 모든 선생님들께서 잘 가르치셨다. 자습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사소한 일정 하나까지 수능 중심으로 짜여있었다. 이런 환경은 처음이었다. 아직 1월인데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자료를 많이 주셨다. 어떤 국어 선생님께서 첫 수업 끝나자마자 숙제로 주시는 자체 제작 모의고사를 받으면서, 이런 환경에서도 성적을 못 올리면 그건 대학을 가지 말라는 하늘의 뜻일 거라고 생각했다. 1월은 그렇게 기쁘게 공부했다. 쎈을 풀고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 조기반을 마무리했다. 정규반이 개강하기까지는 1주일의 시간이 있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습했다. 공부하는 게 신이 났다. 이렇게 1년 하면 연고대는 금방이겠네, 싶었다. 그리고 정규반이 개강했다. 조기반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보면서 내적 친밀감이 들었고, 조기반 때 뵌 적 있는 분을 담임으로 다시 뵙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정말 내 재수 생활에 장애물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순조로웠으니까.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이 너무 웃겼고, 좋았고, 수업이 유익했다. 수능에 유익한 수업을 들어본 게 대체 얼마만이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숙제를 했다. 3월 사설 모의고사를 봤다. 반 등수가 나쁘지 않았다. 이대로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3월 말에 갑자기 같은 반 그 애가 눈에 띄었다. 외모가 괜찮았다던가, 공부를 잘해서 빌보드에 붙었다던가, 친구가 많아서 지나가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아니었다. 자리 바꾸는 날 내 짐을 다 정리하고 주변을 살피다가 책을 무거워하는 친구의 짐을 살짝 들어주는 그 애의 모습이 갑자기 눈에 띄었다. 저런 애가 있었네. 애가 참 싹싹하고 친절하네. 이 정도 생각이 다였다. 며칠 후에 좁은 교실 복도에서 어떤 사람이랑 부딪힐 뻔해서, 내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비켰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 애가 머쓱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꾸벅하고 지나갔다. 그때까지도 별 생각 없었다. 저번에 그 친절한 친구네.. 되게 머쓱하게 웃는다... 정도였다. 그 후에 몇 번 더 눈이 마주쳤다. 급식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친구랑 통화하다가 지나가면서, 선생님한테 질문하러 나가다가. 그러다가 갑자기 이름이 궁금해져서 좌석 배치표를 보고 이름을 알았다. 이름을 몇 번 되뇌어보고, 또 며칠은 까먹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또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그때서야 갑자기 ‘내가 이 애를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종강날까지 쉼없이 좋아했다. 


책을 보는 시간보다 그 애를 쳐다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나는 내가 4월 중순부터 종강날까지 수능 생각보다 그 애 생각을 더 많이 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생각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매력적인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 애는, 웃는 얼굴이 정말 예뻤다.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다 인정할 정도로, 정말 웃는 얼굴이 예뻤다. 그리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상냥했다. 삭막한 재수학원에서 사람 성격이 상냥한지 아닌지를 어떻게 아냐, 싶겠지만 그런 삭막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사람 성격이 상냥한 게 보일 정도로 정말 상냥했다. 제스처나 행동 하나하나가. 누가 봐도 여유 있는 집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것이 티가 나는, 다정다감한 친구였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았다.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 사람이 몰리는 부류의 인간인 것 같았다. 반에서 소위 좀 까불고 분위기 띄우는 애들도 굳이 그 애 자리에 가서 농담 던지고 장난을 쳤다. 그러면 그 애는 예의 그 머쓱한 웃음을 지으면서 농담을 받아 쳤고, 주변 분위기는 아니나 다를까 화기애애해졌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 애는 존재 자체가 너무 반짝거리는 친구였다. 쳐다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고, 대체 저 머쓱한 웃음에 어떤 사람이 안 넘어가나 싶었다. 


얼마 후에 우연한 계기로 같은 학원의 그 애 고등학교 동창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아 너 그 학교 나왔어? 우리 반에도 너네 학교 나온 애 있던데”라면서 그 애 얘기를 꺼냈고, “아 너 걔 알아? 하긴 애가 참 싹싹하고 밝아보이더라. 고등학교 때도 인기 많았지?”라며 은근슬쩍 동창 친구를 떠보았다. 그래서 들은 얘기는 내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래서 너무 속상한 이야기뿐이었다. 들은 바에 의하면, 그 애는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너무 성격이 좋고 인기가 많았으며, 덧붙여 사귀던 애가 있었다는 말도 들었다. 정말 전교생이 다 알만큼 유명한 커플이었고, 정말 예쁘게 사귀었었는데, 그 애가 재수를 하면서 사이가 멀어졌다, 그래서 그 상대가 올해 4월 즈음에 그만 만나자고 통보했다더라, 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들을 들으며 정말 많은 생각에 휩싸였다. 저런 애는 사랑하는 사람한테 뭐라고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까, 그 상대였던 애가 정말 너무 부럽다, 그나저나 그 상대는 정신이 나간걸까, 저렇게 괜찮은 애한테 어떻게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한단 말이야, 저렇게 귀엽고 착하게 생겨서 성격도 그러려니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죽하면 친구가 저렇게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겠어, 진짜 보면 볼수록 너무 매력적이다, 말이라도 걸어볼까? 


그러나 차마 말을 걸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애랑 너무 다른 부류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애가 맑다면 나는 탁하고, 그 애가 밝다면 나는 어두웠다. 나는 1년에 친구를 5명 이상 새로 사귀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다. 사람이 많은 곳이 싫고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는 것이 버겁다. 중고등 6년동안 얘다! 싶을 만큼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만나 지낸 적이 없다. 특히 고등학교 3년은 인간 관계에서 너무 고생을 하고 진이 빠져서 고등학교의 ㄱ만 들어도 속이 메슥거리는 기분이었다. 그 정도로 학창시절이 힘들었다. 그렇다고 내 외모가 눈에 띄냐?면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눈에 띄게 공부를 잘하느냐?면 또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집이 좀 사느냐?면 앞서 말했듯이 아니다. 뭐 하나 나에게서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나는 나 스스로가 너무 실망스럽고 초라해지는데, 그 애는 너무 반짝거린다. 그래서 그 애를 좋아하는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닿을 수 없는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감정과 시간을 과하게 쏟아 붓는 나 자신 때문에.


예시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그 애가 점심시간에 교재를 들고 어디로 간다. 그러면 나는 혹시 선생님한테 질문하러 가는 건가? 싶어서 시간차를 두고 같은 교재를 들고 따라간다. 우선 지하 1층 교무실에 갔는데 그 애가 없다. 그러면 3층 교무실로 가서 그 애를 찾아보는 데 아니나 다를까 있다! 그러면 속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그 애 뒤에서 질문 순서를 기다린다. 그러다가 그 애가 갑자기 뒤에 있는 나를 보며 놀라고, 그걸 보며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질문 순서를 기다린다. 그 애는 자기 순서에 질문을 한다. 그러면 나는 귀를 기울여서 듣는다. 그런데 듣다 보니 문제가 좀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괜히 궁금한 척 “어 저도 그거 질문인데요” 이렇게 말하니 선생님이 같이 들으라고 말한다. 그러면 상냥한 그 애는 자기가 앉아 있던 의자를 내주면서 나보고 앉아서 들으라고 한다. 나는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지르고 싶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떨떠름하게 고맙다고 말하고 걔는 아무렇지 않게 설명을 마저 열심히 듣는다. 이 예시에서 그 애는 모르는 문제의 해답을 알게 되었다는 수확이 있다. 그러나 나는 조금의 수확도 없다. 그 애를 점심시간에 지켜보며 소모한 시간과 감정, 그 애를 찾아 다니면서 소모한 시간과 감정뿐이다. 굳이 얻은 것을 따져보자면, 그 애 때문에 궁금하지도 않은 문제의 풀이 설명을 들으며 오는 현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애와 같은 시간을 공유한 데에서 오는 변태 같은 짜릿함 정도이다. 그게 다다. 이런 일이 수도 없이 반복되었었다. 4월, 5월 내내. 


나는 그 애와 한 교실에 있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강대 6야 유시험 전형을 신청했다. 어떻게든 저 애를 피해야 올해 수능을 볼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작년보다 망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흔들리면서 6월 평가원이 다가왔다. 학원의 수업과 숙제는 나에게 약간은 버거웠고, 또 나는 성실하게 꼬박꼬박 공부하는 타입은 아니었기 때문에 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애는 얼핏 보기에 다 소화해내는 것 같았다. 점심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고, 항상 연필을 잡고 있고, 주말 자습은 하루도 빠짐 없이 매일 나왔다. 쟤는 내 존재도 모르고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내가 쟤 생각하다가 성적 떨어지는 일은 있으면 안 되지, 라는 생각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주말에도 얼굴 보면 좀 즐겁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주말 자습을 하루도 빠짐 없이 매일 나갔다. 


어쩌다 보니 6평에서 나름 괜찮은 성적을 받고 만족했었다. 다만 우연히 그 애가 내 앞자리에서 시험을 보게 된 탓에 괜히 긴장한 나는 근 3년 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마킹 실수를 과목별로 골고루 5개를 하게 되었다. 그 충격도 컸지만, 6야 유시험도 떨어지고, 한편 6평을 거의 만점에 수렴하게 받은 그 애를 보며 현타를 강하게 받고 다른 학원의 반수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왜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학원을 나오려고 하냐는 부모님의 질문에 차마 같은 반에 좋아하는 애가 있어서 공부에 방해되니까 라고는 말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둘러대다가 시기를 놓쳐서 학원에 눌러앉게 되었다. 


그 뒤로는 그냥, 별거 없다. 나는 그 아이를 내내 좋아했고, 쉬지 않고 좋아했다. 종강날까지 말을 건다거나 접점이 생긴 건 없었다. 그냥 나는 항상 그 아이를 지켜봤을 뿐이었다. 나는 걔 덕분에 자습도 더 열심히 나오고 성적도 올리려고 아등바등하지 라고 합리화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게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변명할 여지 없이 그 애는 나에게 약보다는 독이었다. 그 애를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나는 점점 마음 한 켠이 문드러지는 기분이었다. 


딱 한 번 용기를 내서 말을 걸어볼까 한 적이 있었다. 10월 중순에, 집에 가는 정류장 앞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그 애를 보며 너무 놀랐고, 사고 회로가 정지했었다. 여기서 버스를 타는 애가 아닌데, 갑자기 왜 여기에 있지? 라는 생각과 함께 곧 있으면 종강인데, 한 번 말이라도 걸어보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같은 생각을 하며 나 혼자 붕 떴었다. 그 애 옆에 같이 서지는 못하고, 한참을 뒤에서 떨어진 채 같은 버스를 탔다. 자리에 앉고 나서, 정말 몰래, 아주 살짝 그 애를 쳐다봤을 때, 앉자마자 가방에서 책을 꺼내 공부하는 애한테 차마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너무 미안했다. 감히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송구한데, 내가 네 공부까지 방해했다가는 내가 나를 미워하게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그 날로 너를 보냈다. 정류장에서도, 마음 속으로도. 그렇게 애써 나를 외면하며 학원은 종강했다.


수능 날 아침부터 너 생각을 했다. 나는 그냥 간신히 최저만 맞출 수준이어도 좋으니, 너만은 부디 제발 서울대에 가라.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나는 나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 왔었는데, 어떻게 수험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너가 먼저 생각날 수 있는지. 정말 의아했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큼은 반드시 이 시험에서 성공해라. 닿지도 못할 이런 부질 없는 생각을 하며 두 번째 수능이 끝났다. 


생각보다 수능을 잘 본 나는 지원했던 논술 고사에 응시하지 않았다.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하다가 너를 한양대 논술 시험장에서 봤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었다. 너무 속상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큼은 진짜 잘 되기를 바랐는데. 


나는 봄에 너한테 관심이 생겨서 여름에는 너를 열심히 좋아했고 가을에는 어쩌면 사랑했던 것 같은데 겨울에는 너를 정리해야 한다니, 마음은 따라주지 않았지만 이성은 그래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좋은 추억으로 남기며, 아무리 감정적으로 흔들렸어도 결국 나는 너 덕분에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었다는 핑계를 대며 너를 정리했다. 


그렇게 해가 넘어가고 나는 21살이 되어 빈둥거리고 있을 무렵에 정시 발표가 났다. 원하던 대학의 원하던 과에 무난하게 합격하고 담임 선생님께 카톡으로 연락을 드리면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여쭤봤다. 선생님 저희 반에 저랑 같은 대학 같은 과 가는 친구 있어요? 선생님은 너의 이름 세 글자를 답장으로 남겼다. 우리반에서 너랑 나만 그 대학 그 과에 붙었다고. 


사실 쓰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내가 다닌 학원은 종강 다음날, 그러니까 11월 12일까지 자습을 할 수 있게 학원을 열어뒀었는데, 그날 나는 펑펑 울었다. 처음에는 울지 않았다. 그냥 애들이랑 헤어지면서 수능 잘 보라고 초콜릿이랑 쪽지를 주고 웃으면서 헤어질 요량이었고, 저녁 시간이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애들이랑 인사하고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사실 친구들이 저녁을 먹으러 나가고 텅 빈 교실에서 고민 끝에 너의 책상에 쪽지와 초콜릿을 남겼었다. 내용은 대충.. 앞으로 다시 볼 일 없겠지만 그래도 너는 잘 할 수 있을 거야,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자! 뭐 이런 횡설수설하는 내용이었는데. 아무도 없는 저녁시간에 너 책상에 그 쪽지 올려 놓고 오는데 눈물이 났었다. 이제 진짜 못 보겠지, 연락하기도 어렵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정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다 쳐다볼 정도로 강남 한복판에서 펑펑 울었다. 학원을 나와서 정류장 쪽으로 가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걔가 그 쪽지를 보고 집중이 안돼서 공부에 방해되거나 수능을 못 보면 어떡하지? 뭐 그런 생각. 그래서 또 울면서 다시 학원에 들어가서 쪽지를 챙겨 나왔다. 차라리 밥을 일찍 먹고 돌아온 너가 그 쪽지를 이미 봐버렸길, 혹은 너의 친구 중 누군가가 그 쪽지를 벌써 발견했길, 이런 생각을 했지만 야속하게도,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그 쪽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 쪽지를 내 가방에 쑤셔넣은 채로 나는 수능 전전날이라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컨디션 조절이고 나발이고 버스에서 집까지 내내 울었다. 그냥 그랬었다. 그 정도로 너는 내 감정을 쥐고 있었다. 그런 너를 이제 다시 만날 것 같다.

나는 내가 볼 수 있는 너의 모습을 빠짐 없이 다 좋아했지만, 만약 가장 좋아하는 모습을 고르라면 생각나는 모습이 있다. 바람이 적당히 선선하고 해는 적당히 뉘엿뉘엿한 10월 초의 저녁 식사 시간에, 양치를 하고 돌아와서, 우리 반 앞에 있던 통유리 창문을 반쯤 열고 바람을 쐬며 친구랑 수다를 떠는 너의 모습을 정말 가장 좋아한다. 진심으로 좋아한다.

너에게 건네는 첫마디로 어떤 말이 좋을까 고민하며 나는 개강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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