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역사서술(교육)의 문제점을 파헤쳐봅시다. (당쟁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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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절미하고 들어갑시다. 현재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이 ‘조선’을 ‘망국’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얼마나 왜곡된 서술을 하는지. 조선이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당파싸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이야기인지.
흔히 당파싸움(당쟁)의 대표격으로 꼽는 것이 바로 예송논쟁이다. 사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웃긴 일인데, 예송논쟁이 무엇이냐고 간단히 설명하자면 ‘왕가에 상이 났을 때, 왕실의 사람들이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가’를 두고 이뤄진 논쟁이다.
이 예송논쟁을 통해서 참으로 많은 사람이 대역죄인이라는 이름을 받고 죽어나가고(..) 여튼 그러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당파싸움의 대표격으로 꼽아 쓸모없는 정치다툼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의 현재 주류역사학의 입장과 거의 유사하며, 또한 흔히 중고딩때 배우는 국사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설명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예송논쟁을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치졸함의 극치이며, 일제시대의 망령에 휩싸인 식민사학의 계승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예송논쟁은 성리학에 정통하지 못한 일개 서생들은 끼어들 수도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학문적 논리가 개입된 대격돌이었으며, 그 논쟁에 유생들의 목숨이 좌지우지되는 것 또한 조선이라는 국가에서는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조선뿐만 아니라 그 어떤 나라에서도 그리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좀 더 세부적으로 파고들어 보자. 이 문제는, 효종이 인조의 장남이 아니었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인조의 장남은 다들 익히 아시다시피(모르는 분도 있겠지만) 소현세자였고, 그 차남이었던 봉림대군이 바로 효종이다. 효종이 죽고 현종이 그 뒤를 잇자 효종의 어머니인 자의대왕대비가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는가를 가지고 조정에 격론이 벌어지는 데, 이를 예송논쟁이라 칭한다.
흔히 송자라고까지 불리는 조선 사상계의 거두 송시열은 봉림대군의 스승이었던 것으로도 유명한데, 사실상 조선 성리학의 완성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송시열의 주장은 대강 다음과 같다. ‘효종은 둘째 아들이므로 서자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효종의 어머니인 자의대왕대비는 서자의 상에 대한 예로 기년복을 입어야 한다.’ 이에 반하는 남인의 영수이자 문학의 거두로도 유명한 윤선도 등의 경우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비록 둘째 아들이나, 왕가의 적통을 입은 효종은 적자와 동일시하여 취급하여야 하므로 효종의 어머니인 자의대왕대비는 적자의 상에 대한 예로 삼년복을 입어야 한다.’
이러한 두 의견이 조정에서 대격돌하게 되고, 이는 어마어마한 논쟁을 촉발시키게 된다. 문제는 이 논쟁은 두 가지의 경향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이 논쟁의 경우 자신들이 그 동안 닦아왔던 학문을 모조리 쏟아던져야 하는 자존심싸움이었다는 것이다. 실제 이 당시 노론과 소론에서 왕에게 올렸던 상소, 그리고 어전에서 일어났던 격론들은 솔직히 말해서 무슨 소리인지 이해조차 하기 힘든 심오한 사상적 대립을 이룬다. 단순히 저 ‘상복’에만 한정되지 않은, 서로간의 학문적 차이를 미묘하게 파고들면서 상대의 논리를 분쇄하고 자신의 논리를 지키려 하는 엄청난 논쟁이 이뤄진다. (양이 방대해질 뿐만 아니라, 필자조차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차마 여기에 자세히 적지 못하는 점은 양해 바란다.)
두 번째로는, ‘왕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조선은 왕권이 굳건한 나라였다. 아무리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이라도, 왕의 눈 밖에 날 경우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왕이 ‘대역죄인들을 참형에 처하라’라고 명하는 순간, 강대한 세력이고 나발이고 줄초상을 치를 수밖에 없는 것이 조선이라는 국가의 구조였다. 그러하기 때문에, 현종의 아버지인 효종을 ‘서자’로 격하시켜버린 송시열이 현종의 눈밖에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결국 저 예송논쟁의 시작은 송시열의 승리로 결론났으나, 15년 후 다시 촉발된 2차 예송논쟁에서는 ‘그럼 송시열의 말대로라면 나는 서자의 아들이란 말인가’ 라는 현종의 마음을 끊임없이 움직인 남인이 승리하여 서인의 대거 실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다른 재미있는 예를 들어보자. 임진왜란 직전에 일본의 시정을 정찰하러 간 황윤길과 김성일의 예를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사 황윤길은 일본이 전쟁을 준비한다고 보고했고, 부사 김성일은 일본이 군비증강은 하고 있으나 조선에 쳐들어올리는 없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황윤길은 서인, 김성일은 동인이었다. 이를 두고, 두 사람이 당파의 입장에 휘말려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하며 싸우기 급급했다고 현재 대한민국의 역사책은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당파 싸움’이 망국의 이유였다고 몰아가기 위해 숨겨진 사실이 하나 있다. 위의 두 사람과 동행했던 서장관 허성은 김성일과 같은 동인이었으나, 황윤길과 같이 ‘일본이 조선을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 부분이 묘하게 서술에서 빠져버린 이유가 무엇인지는 이쯤 되면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다. 그 당시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 소북과 대북, 노론과 소론. 이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이해 움직였다. 자신들이 정치권에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권력을 얻기 위해 행동했다. 그러나 이는 응당 ‘정치’라면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전 세계 어느 역사에서도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절대 권력’을 가진 지존의 앞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당연히 일어났던 일이건만 요상하게도 조선에서의 일들만 ‘당쟁, 당파싸움’이라는 이름 아래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저 당시의 사람들은 결코 ‘이익’과 ‘출세욕’을 위해 이합집산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었겠으나, 조선시대 정치에서 분파가 일어나는 것은 거의 절대적으로 그들의 ‘학문적 차이’에 기인했다. 이것이야말로 그 당시 조선의 정치가 지금의 철새떼를 양산하는 더러운 정치에 비해 몇십 배, 아니 몇백 배는 순수하고 깨끗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적어도 저들은 ‘자신의 학문’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싸웠고, ‘자신의 소신’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투쟁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역사를 가르치는 국가가 있고, 이러한 방식으로 가르친 역사를 거부반응 없이 받아들이는 국민들이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지 판단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일 것이다. 수용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조금이라도 더 알아나가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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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우암 송시열 영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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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예송이군요. ㅋ
개인적으로 예송보다는 환국을 더 좋아라 합니다만... ㅎ
암튼 기해예송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효종이 인조의 차남이었다는 사실이었죠. 적장자가 아닌 적차자가 죽었으니 그 어미는 상복을 3년 입는 대신 1년만 입어도 된다, 는 게 송시열의 주장이었는데...
그 때만 해도 소현세자의 아들 경안군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자칫 효종의 정통성 문제로 불거질 수도 있는 문제여서 결국 송시열이 4종설의 3번째 항목, 즉 "서자가 뒤를 이었을 경우" 대신 경국대전과 대명률에 의해 1년 상복을 입는 것이 맞다고 주장해 넘어갈 수 있었죠.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고 기억을 더듬으며 썼더니 팩트에서 조금 빗나간 부분이 있네요 이제보니 -_- 잘시간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급급해서 적었더니..-_- 노론과 소론이 아닌 서인과 남인의 싸움인데 으익...
일단 급한대로 땜빵질에 들어갔습니다 ㅎㅎ
주장만 있고 근거가 없네
또한, 저 당시의 사람들은 결코 ‘이익’과 ‘출세욕’을 위해 이합집산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었겠으나, 조선시대 정치에서 분파가 일어나는 것은 거의 절대적으로 그들의 ‘학문적 차이’에 기인했다. 이것이야말로 그 당시 조선의 정치가 지금의 철새떼를 양산하는 더러운 정치에 비해 몇십 배, 아니 몇백 배는 순수하고 깨끗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적어도 저들은 ‘자신의 학문’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싸웠고, ‘자신의 소신’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투쟁했다.
이걸 어찌믿노
애초에 조선을 너무 싫어해서 -_-
이걸 어찌믿냐..라고 하면 뭐라 할 말이 없는 건 사실임.
근데 이걸 믿으라고 하는 근거는, 저 당시 사람들은 '소신'이 있었다는 것임.
한번 정한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끝까지 밀고나가는 사람들이었다는 거지.
잘못되면 목이 달아날 게 보이더라도, 왕의 뜻을 거스르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쉽게 고치지 않았어.
그 근거는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좋게 말하면 소신이고 나쁘게 말하면 똥꼬집일수도 있지
학문적 소신있는 선비들이 임진왜란때 어쩜그리 잘 도망갔을까
물론 전체는 아니겠지만... 이순신이 모함도 거짓은 아니겠지 설마 ㅋㅋ
뭐 사실 송시열도 깔 건덕지는 많지 파보면 ㅎ
이순신 모함같은 건 솔직히 세상을 잘못 읽은 것이긴 하지만
어떠한 권력자도 전쟁 이후에 막대한 군사력과 백성의 지지를 얻게 된 군벌을 팽하려 하지 않은 사례는 없어.
비판할 일일수는 있지만 조롱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함.
같이 도망간 신하들이 다시 돌아와서 한 일이 이순신 모함인게 아이러니 ㅋㅋㅋ 그러니까 지들만의 학문말고는 눈꼽만큼도 관심없는거지
아예 정신상태가 명의 씨다바리라서 왜가 처들어오면 명한테 도와줍쇼 이러는 꼴이잖아
그리고 막대한 군사력이라 보기도 어려운게 이순신이 옥살이 할때도 전시상황이었는데 무슨 쿠데타 ㅋㅋㅋㅋ
근데 그상황에서 도망을 안 갈수는 없잖아?...
정신상태가 명의 시다바리인 것도 솔직히 어쩔 수 없는거고....
'왜 자주적이지 못했냐' 이런 걸로 까는건 넌센스지. 지금 상황에서 보기엔 웃기지만
내가 정말 강조하고 싶은 건 '그 당시의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할수밖에 없었느냐'를 먼저 봐야한다는 거임. 지금의 기준에서 옛날 사람들을 평가하려 들면 하나같이 바보같고 이해를 못 하는게 당연하지. 그 당시 사람들은 그게 당연했던 거야. 일단 지존은 하나뿐이고, 지존을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우선적으로 제거되어야 한다. 그게 그 사람들의 판단 준거인거거든
당시 조선 양반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느냐를 따질 필요가 있을까? 그당시 백성의 입장에서 생각해도 그건 아니올시다지.. 나중에 도망갔다 다시와서 주인행세하는꼴은 어떻게 생각함
그게 가능한거 자체가 이미 에러
따질 필요가 있지. 조선은 철저한 계급사회였고,
지금 상황에서야 백성들 입장에서도 아니올시다였으리라 여기지만 과연 그 때의 백성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당연히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부터 따져야지. '지금 생각해 볼 땐 에러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라고 판단되면 그 부분은 인정해줘야 하는거고.
비판할 건덕지가 없는 조선은 아냐.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유난히 조선의 부정적 측면은 과대해석되고 끊임없이 재생산되지.
역사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그러한 사례가 많음에도 그것들이 모두 '조선'이라서 그렇다
요런 식으로 해석되는 게 문제라는 거임.
깔 건 까야지 물론
조선이 까일수밖에 없는건 임진왜란때 한번 밟힌 후에도 대비도 못하고 계속 밟혀서가 아닐까 생각됨..
물론 박정희때 안보문제로 인해서 이순신이 재발견되고 파벌, 사화가 확대해석한 면도 없지 않지만 사실이 그렇잔누
뭐 호란때도 처절하게 밟히긴 했지만... 그건 솔직히 대비를 충실히 했어도 제대로 막았을까 싶기도..
참고로 파벌과 사화가 확대해석된 건 박정희때 이전에 이미 1900년대 초반에 완성된 것...
이런 식으로 군사력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 십만양병설이라는 개드립이 사실인 양 퍼지고
심지어 노래에도 십만양병 이율곡이라고 들어가고...(십만양병설을 이이가 진짜 주장했다면 이이는 준내 까여야됨)
뭐 군사적 측면에서 조선을 까는 건 할 말 없지. 국방에 대한 인식 자체가 빈약한 나라였으니
??????
뭔소립니까 그건? 십만양병설이 허구라고?
허구야. 개소리임.
ㅇㅇ 이이가 십만양병설 주장했다는거 뻥 ㅋㅋㅋ
도대체 조선이 고려보다 나아진게 뭔지 궁금함
적어도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를 비교하자면 훨씬 나아졌지 ㅎㅎ
목숨 걸고 싸운 게 성리학이었다는 데에서부터 에러
차라리 과학, 기술, 공학 같은 실학을 갖고 목숨 걸고 싸웠다면 국운이 달라졌을텐데...
암만 자위를 해봤자 결과적으로 세계적 관점에서 국가의 힘과는 아무 관계없는 당쟁이었고 결과는 참담했죠
지금도 그 당쟁의 역사는 계속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과학 기술 공학 같은 진짜 도움되는 학문은 여전히 천시받고.. ㅋㅋㅋ
지금의 '사상학'과 그 당시의 '사상학'의 파워는 어마어마한 차이니까요.
동양사에서 '정통성'을 빼놓고는 무엇도 논할 수 없고, 그 정통성은 결국 '성리학'에서 나온 것이었으니까요.
서양과 굳이 비교해서 차라리 과학기술과 군사력을 키웠으면 어땠겠느냐라고 말하는 건 지금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일 뿐, 저 당시 사람들을 판단하는 준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내가 알기로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라서 전제군주제 치고는 왕권이 강하지않았던 걸로 아는데, 두번째는 뭐지;?
편견이지. 니가 알고있는 '명제'를 그대로 대입하려고 하니까 오류가 생기는겨.
맘에 안드는 사람이 있다면 왕이 '반대파'를 등에 업건 업지 않건 모가지정도는 가볍게 날릴 수 있는 힘이 있었지.
특히 즉위한지 시간이 오래 된 경험많은 왕이라면 더더욱
조선의 경우는 초월적 존재로서 왕이존재했기때문에 왕권은 강했음, 하지만 정치는 신하들이 좌지우지했다고 할까. 반대로 고려는 국왕권이 초월적 지위로 보장받진 못했지만 왕이 대부분의 개혁을 직접함.. 정책결정이나 정치개입에 있어서는 고려>조선
사건의 진실은 표면으로 떠올리지 않고 A vs B 이런식의 대결구도로 역사교육을 유도한다...대충 이런 내용이에요???
아니 조금 달라.
'조선'을 '망해야만 할 나라였다' 라고 주장하기 위해 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한 식민사학이 고스란히 살아있다는 거지
니 말도 틀린 건 아니다
저 이 글만 보고서는 조선을 망해야만 할 나라였다고 주장하는 바를 어디서 그 근거를 찾아야할지 모르겠어요ㅠㅠ
일반적인 역사서술에서는 '당파싸움이 조선을 망하게 했다' 라고 말한다는 거지.
난 그걸 까는거고
조선 참 대단한 왕조임에도
많이 까이는건
일제 식민지하 일본의 학자들이 왜곡의 주 대상을 조선으로 삼았다는 점이 크죠
합방당시 조선의 수준이 일본 17세기 이전의 문화보다 열등하다고 봤죠
정체성론이라고 하기도하는데,
실제 당파라는게 단점도 있지만
어떻게보면 현재 정치와 가장 닮아있는 근대적인 제도이기도함
그리고..
식민사학의 왜곡에 비켜나 있던 고려왕조는 사실 우리한테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로 인식되어지고 있음. 이건 일제시대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인식에서 이미 정형화되어 내려져 온것임..
실제로 지금도 '조선은 고려보다 나은게뭐야'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꽤많음
대부분의 모습에서 고려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있음에도,
조선은 식민사관에의해 왜곡되어 후퇴한나라, 고대의나라, 일본보다 6-7세기 뒤쳐진 나라라는 인식이 은연중에 박혀있음.
경제규모만 놓고봐도 차이가 엄청난데 ,
숫자를 좋아하니 숫자만 놓고 따지면
고려시대 조준이 올린 상소문을보면 간전의 수가 50만결도 채 안됨,
반면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173만결로 3배이상 늘어난 수치임, 이건 누락된 곳이있기도하지만
연장상경농법의 도입등 농법과 그외적인곳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수치..
이외에도 좀 많은데 무튼
역사라는게 현재 연구경향이나 역사들이 당면한 과제에 많이 영향을 받게됨..
지금껏 식민사학 그리고 반식민사학의 대립과 극복의 과정이었다면
이젠 좀 다원적으로 볼필요가있다고생각함..
그래봤자 백성들에겐 헬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