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청의미 [447559] · MS 2013 (수정됨) · 쪽지

2018-07-26 16: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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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품격 - 이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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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득심 : 들어야 마음을 얻는다.


[동정과 공감은 다르다.


동정이라는 것은, 내 처지가 그들과는 다르다는 마음이 전제된다.


공감이라는 것은, 내 감정이 그들과 같다는 마음이 전제된다.


공감은 인仁이다. 인자하다는 의미를 넘어서, 세상의 모든 것을 한몸으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불인不仁은, 다른사람의 감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음을 뜻한다.


동양 의학 서적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신체 일부가 마비되면 불인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타인과 정서적으로 감정이 통하지 아니한다."


즉, 몸과 마음의 상태가 온전하지 않을 때, 상대방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한다.]


나는 봉사를 하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이 아이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있는가.


이 학생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있는지..


조금 더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 또한 정말 쉽지 않다.



이 아이들은 한명이 각각 다르다. 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만 옳다고 어떻게 강요할까.


그렇기에, 멘토링은 한명이 힘들다. 봉사는 한명이 어렵다. 교육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분야이다..



과언무환 : 말이 적으면 근심도 없다.


[섭공이 정치에 관하여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까이 있는 사람은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은 찾아오는 것입니다."


악의에 가득찬 말을 하는 것을 삼가해야한다.


악의로 빚어진 언어를 날카롭게 휘두르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러한 언어는 타인의 마음을 베어버린다.


반대로, 말이라는 악기를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다면, 언젠가 사람이 다가오게 된다.


말은 자성을 가지고 있다. 말에 두려움이 담겨있으면 공포가 엄습하고


말에 재미가 있으면 눈길을 끌어당긴다. 말에 꿈이 가득하면 가능성이 따라오고


말에 사랑이 녹아있으면 언젠가 사람이 다가온다.]


언젠가 너무 힘들때면, 나는 말에 힘듬을 담았다.


그렇기때문에 어찌보면 내 삶에 힘겨움만 늘었을지도 모른다.


내 삶에 불확실함과 두려움이 어느샌가 늘어있는 것을 본다.


사실 모르겠다. 불확실해서 내 말이 두려움을 갖는 것인지


내 말에 두려움이 있어 불확실해진 것인지 모르겠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은 참 알 수 없는 이야기다. 씨가 될 말을 하기때문인지, 말이 정말 씨가 되는지..



언위심성 : 말은 마음의 소리다.


[2001년 9월 11일. 세계 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졌다.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은, 암 투병중이었지만 사고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와 구조작업을 지휘했다.


구조대원이 줄리아니 시장 앞을 가로막았다.


"더 들어가면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어서 안전한 곳으로 피하세요."


줄리아니는 소리치며 대답했다.


"나보고 물러나라고요? 난 괜찮아요. 일단 사람들을 북쪽으로 대피시켜요! 북쪽 길부터 뚫어요!"


북쪽 길부터 라는 말은 메아리처럼 퍼져나갔다. 



며칠 후 줄리아니 시장은 연단에 올랐다.


"뉴욕은 내일도 이 자리에 있을 겁니다. 테러가 우리를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이 말을 이후로, 뉴욕은 오래지않아 예전의 모습을 회복했다.]


언행의 일치는 중요하다.


특히 누군가에게 가치를 전하는 멘토의 입장에서는, 교육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중요하다.


나의 능력을 벗어난 말로 포장하지 말아야한다.


못지킬 약속을 하면 안된다. 


지금 당장에는 어리석어보일지라도. 지금 당장에는 아무런 득도 안될지라도 


나의 행동과 나의 말을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학생들을 위하는 멘토로써, 계속 배우는 사람으로써 살고 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빈부와 지역의 격차에 상관없이 학생들의 잠재력을 끌어내줄 수 있는 멘토가 되고싶다.


세상을 바꾸고싶다. 적어도 무력감에 젖어 아무것도 못하는 학생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 말과 내 행동은 일치한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말들에 부끄러움 없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대언담담 : 큰 말은 힘이 있다.


[명령이 한쪽의 생각을 다른 한쪽에 흘려보내는 '치우침의 언어'라면, 

질문은 한쪽의 생각이 다른 쪽에 번지고 스며드는 '물듦의 언어'이다.


가르친다는 뜻의 영어단어 educate는 밖으로 끌어낸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부모나 교사가 일방적으로 생각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잠재적 능력을 발현하도록 밖에서 돕는 게 진짜 가르침이다.


어머니도 그랬던 것 같다. 어머니는 엉뚱한 내 질문에 짜증섞인 말을 내뱉거나 귀를 막지 않으셨다.

늘 자상한 목소리로 나와 허밍하듯 질문을 주고 받으셨다..]


내가 처음 멘토링을 하게된 계기는, 어떻게 연락이 오게 된 학생의 꿈이 대통령이어서..이다.


그 대통령의 꿈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배워서 대통령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를 설명해줘야했다.


나는, 그 계기로 청년단체 활동을 해보기도 했고, 정책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 멘티는, 내가 이러한 것을 배워서 알려주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그 아이에게 꿈을 접으라고 설득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는 그 대신, 어떻게 학생의 역량을 키워줄지를 고민했다. 그 학생이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되기 힘들다고 해도.


그렇다해도 나는 계속 배웠다. 덤으로 내가 만든 정책까지 알릴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내가 멘토로써 살아감에 대한 의미를 생각한다.


멘토라면, 내가 직접 배워서 알려야한다. 내가 지금은 수학선생이지만, 학생이 CEO를 꿈꾸고있다면, 배워야한다.


그 즉시 도서관에서 경영에 관한 책을 나는 빌려야한다. 그게 멘토다.


학생이 지금 당장 몸이 아프다고 사정할 때, 나는 다리가 부러진 경험을 알려주었다.


학생이 소설가가 되고싶다고 했을 때, 나는 학생이 만든 소설의 도입부를 읽어보고 평가해주어야 했다.



이것이 교육이다.


이제, 나는 더 많은 것을 해보고싶다.


더 많은 것을 도전해보고 싶다. 


단순하고 당연한 이유지만.. 그래야 나중에 내가 받을 질문에도 쉽게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배우고 가르치는 삶이 좋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나는 그동안 노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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